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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붉은 글자 새긴 동한 시대 도기 항아리 5점 발굴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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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전인데 저승 가는 노자로 넣어준 것이다.

 
(华商网, 2026년 6월 4일 오전 10시 16분) 6월 3일, 화상보华商报 기자는 섬서성고고연구원으로부터 서안 함양 국제공항西安咸阳国际机场 3기 확장 구간에 포함된 와유 묘지[瓦刘墓地, 왈루촌 공동묘지]에서 작성 연대가 명확한 동한 시대 무덤[동한 기년묘东汉纪年墓] 4기를 발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발굴된 도기 항아리[陶罐(瓶)]에는 붉은색 먹으로 새긴 연대가 명확하게 드러나며, 동한 시대 민간 신앙, 도교의 기원, 장례 제도, 가족 사회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발굴된 4기 무덤은 연대가 명확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장품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런 그릇류가 출토됐다고



섬서성고고연구원 프로젝트 책임자이자 연구원 돤이段毅는 2020년 6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이 연구원소이 국제공항 3단계 확장 공사 과정에서 총 4,093기 무덤을 발굴했다고 설명했다.

왈루묘지瓦刘墓地는 이 프로젝트 두 번째 발굴 지역에 위치하며, 이곳에서는 동한 시대 무덤 110기가 발견되었고, 그중 4기는 연대가 확인된 무덤이다.

특히, 붉은 먹물로 연대가 명확하게 적힌 도기 항아리가 발굴되었다.

"최근 수년간 수천 기 후한 무덤이 발굴되었지만, 관중关中 지역에서는 연대가 명확한 무덤이 상대적으로 드뭅니다."
 



이번에 발굴된 네 기 연대가 확인된 후한 무덤은 모두 길고 경사진 통로[장사파묘도长斜坡墓道]를 지니며, 개중 두 기는 단실 토동묘单室土洞墓이고, 나머지 두 기는 측면 석실이 있는 이중 석실 무덤[带侧室的双室墓]이다.

가장 오래된 무덤은 한 순제顺帝 양가阳嘉 원년(서기 132년)으로, 그 다음으로는 한 환제桓帝 연희延熹 8년(서기 165년), 영강永康 원년(서기 167년) 순이며, 가장 늦은 무덤은 한 영제灵帝 중평中平 5년(서기 188년)으로 50년 이상 간격을 두고 있다.

연대가 명확하게 확인되고 풍부한 매장 유물이 함께 출토된 이 후한 무덤들은 외루瓦刘 묘지와 관중 지역 후한 고분 연대 측정에 신뢰할 만한 기준점을 제공하며, 이 지역 후한 고분 연구의 중요한 공백을 메워준다.
 



다섯 점 도기 항아리에 새긴 붉은 먹글씨는 악귀를 쫓는 부적의 전형적인 예다.

단의段毅는 후한 시대에 외루묘에서 발굴된 다섯 개 도기 항아리에 새긴 붉은 먹글씨가 악귀를 쫓는 부적의 전형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양가阳嘉 원년(서기 132년)부터 중평中平 5년(서기 188년)까지의 시기에 제작된 이 항아리들은 후한 중말기 중원과 서북 지역 장례 풍습을 보여준다.
 



그 문장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첫째, "영강 원년 12월 11일, 경술 삭 11일 경신일에 완성하다[永康元年十二月庚戌朔十一日庚申直成]"과 같이 장례일의 천간과 지지를 기록한다.

둘째, 천제사자天帝使者, 청오자青乌子, 황신黄神, 사신四神과 같은 신기神祇를 불러 간청한다.

셋째, 반복重复, 팔괴八魁와 구결九坎, 불길한 죽음의 날[사일불량死日不良], 달과 별자리 운행의 불규칙[월숙실도月宿失度]와 같은 해제解除[제앙을 면함] 사유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법이 명하는 대로[여율령如律令]” 또는 “법률을 시행하듯 서둘러 행하라[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와 같은 문구로 마무리한다.

"이러한 형식이 통일되어 있다면, 이는 실제로 공유된 장례 철학이나 신념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 기능은 공식 문서의 권위를 모방해 저승에다가 망자의 죄가 사함되었음을 선포하고, "재앙을 천리 멀리 옮겨[移央(殃)千里之外]" "죽은 자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死人不繇(扰)]" "산 자는 번영한다[生人富昌]"는 것이다.

양가阳嘉 원년의 주서도문朱书陶文에서는 "십이사자팔사"(육정육가신)가 영혼을 되살린다고 언급하는가 하면, 연희延熹 팔년의 주서도문에서는 "제한 없는" 친척의 범위를 상세히 열거하고, 영강永康 원년의 주서도문에서는 "세월일시가 길하다[岁月日时吉良]"고 하는 이 모든 것은 당시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른 길이다[生死异路]"라는 개념 아래 장례 금기를 세심하게 다루었음을 보여준다.

"전국적인 고고학 발굴 조사 결과, 대량으로 출토된 붉은 먹물로 쓴 도기 도기 항아리와 단지들은 주로 후한 중후반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회, 정치, 경제가 비교적 불안정했기 때문에 새로운 장례 풍습이 많이 생겨났다"고 단의는 말했다.

그는 이러한 유물들이 초기 도교 신화와 한나라 시대 민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한나라 시대 민간 신앙, 장례 제도, 가족 사회 연구를 위한 1차 자료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러한 무덤들이 규칙적으로 밀집한 양상은 가족 묘지 특징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华商报大风新闻记者 马虎振(陕西省考古研究院供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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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도교가 종교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그 시점이라, 그것이 민간습속과 결합해 주로 사후 세계를 다루는 문제에서 종교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는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훗날 도교에서는 저 급급여율령을 주문에서 집중적으로 쓰는데, 불교의 진언과 결합하기도 한다. 

저 문구는 무령왕릉 묘권墓券에서도 보인다. 다 도교 습속이다. 

도교를 모르는 훗날 헛소리가 찍찍 나타나는데, 고작 동아시아 고대 종교라고는 불교밖에 접한 적 없는 놈들이 하는 말이라고는 푸닥거리 불교니, 인도에서 유래한 밀교니 하는 헛소리가 그것이다. 도교를 알면 밀교라는 존재조차 얼마나 허망한 개소리인지 단박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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