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주역
지금은 폐쇄한 과거 우리 공장 연합뉴스 내 블로그에 2008년 07월 25일 08시 42분 30초에 게재한 글이다. 당시 언론문화 한 켠을 그런대로 증언한다고 생각해 전재한다.
내가 이동하는 거리, 그 장단(長短)을 판별하는 기준은 세 시간이다. 이보다 길면 長이요, 짧으면 短이다. 이 세 시간이란 거리는 내 고향 김천과 지금 내가 사는 서울을 가는 거리다. 가끔 새마을호를 이용하긴 했으나, 대체로 이용한 통일호가 걸리는 시간이 세 시간이요, 자동차로 이동할 때도 한남대교와 김천 톨게이트 간 걸리는 시간도 대체로 세 시간이었다. 세 시간이 너무 길다 했더니, 당시에는 김천 보다 더 아래 사는 대구나 부산 쪽 친구들이 뭐가 기냐고 따지곤 했던 기억이 있다.
어제 전남 나주를 다녀왔다. 나주 복암리 고분군 주변 발굴성과를 취재하기 위함이다. 설명회는 10시 30분 현지에서 예정된 까닭에, 또 나주역에 정차하는 KTX는 몇 대 되지 않는 까닭에, 당일에 시간을 댈 수 있는 KTX는 용산에서 오전 7시 20분에 출발하는 선택 외에는 없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용산에서 나주역까지 2시간 45분 내지 50분이 걸렸다. 그에서 일을 마치고 다시 서울행 KTX에 오른 시간은 오후 5시 40분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2시간 40분 정도만에 용산에 다시 섰다. 현지에 갔다가 내가 아주 친한 분이 모친상을 당했으며, 빈소가 광주에 있다 해서 마침 발굴현장을 견학하러 온 광주박물관 사람들의 자리를 빌려 빈소에 들렀다가 광주역에서 귀환길에 오른 것이다.
나 같은 기자들이 특히 많이 경험하는 일이지만, 출장의 추억이 사라졌다. 1박이란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론 적어도 KTX가 생기기 전까지 영남이나 호남지역 출장은 1박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요즘 1박을 넘기는 지방 출장은 없다. 나 개인적으로 보건대 1박을 넘긴 지방 출장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았다. 요즘은 전부 당일치기 출장이다. 오전에 갔다가 저녁에 귀환하는 시스템이 정착했다.
이 나부랭이를 쓰는 지금도 나는 여독이 풀리지 않는다. 나이의 먹어감 때문인지, 좀체 피로가 쉬 풀리지 않는다. 어제 하루 중 여섯 시간을 기차에서 보냈으니, 몸이 버텨내지를 못한다. 어제 서울엔 물 폭탄이 있었다고 하나, 그 시각 나주는 푹푹 쪘다. 바다에 가깝다 하지만, 그래서 바람이 꽤나 불었지만, 저 누른 황토에서 반사하는 폭염은 사람을 죽인다.
KTX가 초래한 풍경으로 요즘은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는 출장이라고 부산조차 당일치기 출장으로 정착했다는 사실이다. 대구는 말할 것도 없다. 동대구까지는 KTX 전용 레일이 구비된 까닭에 이쪽은 더욱 가관이다. 1시간 45분밖에 걸리지 않으니, 그야말로 후딱 갔다 후딱 돌아오는 출장으로 정착했다. 오죽하면 대구 아낙네들이 아침에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낸 다음에 대학로로 행차해 공연보고 쇼핑하고 내려간 대도 남편 퇴근 전이요, 아이들 귀교 전이라 하겠는가?
당일치기건 1박 이상이건 출장은 피곤하다. 젊은 혈기에 한 때 그것이 사람을 알고 땅을 아는 지름길이라 생각해 정신없이 쏘다니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지금 아는 사람 태반이 이때 만난 사람들이니, 나에게 출장은 많은 유산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젠 모두가 피곤하다. 여관방에 하루를 잔다는 것도 이젠 성가시기만 하다.
KTX는 한편에선 축복이요, 한편에선 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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