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부 시베리아 위바트Uybat 스텝을 건너던 한 양치기가 폭우가 내린 후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계곡 옆에서 철제 물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수 세기 동안 땅속에 묻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물체를 흙에서 파내는 과정에서 가장자리가 손상되고 조각이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고철이 아니라 몽골 시대에 제작된 매우 희귀한 중세 철제 방패였다.
이 방패는 이후 하카스 국립 향토 박물관Khakass National Museum of Local Lore에 소장되었지만, 정확한 발견 장소와 원래의 고고학적 맥락은 더 이상 복원할 수 없다.
카타노프 하카스 주립대학교 알렉산더 포셀랴닌과 노보시비르스크 주립대학교 올레그 미트코 연구원은 2019년에 발견된 방패에 대한 상세한 연구 결과를 유라시아 고고학, 민족학 및 인류학(Archaeology, Ethnology and Anthropology of Eurasia)에 발표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방패는 남부 시베리아에서 보기 드문 유물일 뿐만 아니라, 몽골 시대에 이 지역과 중앙아시아 및 근동 지역을 연결한 장거리 군사 및 정치적 교류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14개 철판으로 만든 무거운 방패
이 방패는 지름 약 65cm 납작한 원형이다.
방패 본체는 각각 1mm가 넘는 두께 동일한 조각 모양 철판 14개를 리벳으로 연결해 제작했다.
현재 남은 무게는 약 2.8kg에 불과하지만, 연구원들은 원래 완전한 방패의 무게가 4kg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방패 바깥쪽 가장자리에는 정교한 톱니 모양 무늬로 장식한 철제 테두리를 둘러쳤으며, 본래 방어 도구였던 방패에 세심하게 마감된 장식적 요소를 더했다.
중앙에는 지름 약 20cm 두드러진 두 조각으로 된 철제 장식물이 자리한다.
장식물 안쪽에는 끈을 끼울 수 있는 좁은 홈이 있으며, 바깥쪽에는 직사각형 모양 구멍과 작은 돌출부가 있는 초승달 모양 투조 장식이 새겨 있다.
남은 구성 요소들을 통해 연구진은 방패 안쪽과 바깥쪽 면을 모두 복원할 수 있었다.
또한 전사가 전투에서 이 방패를 어떻게 다루었을지, 그리고 원정 중에 어떻게 휴대했을지에 대해서도 고찰했다.

전형적인 몽골 방패는 아냐
이번 발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구조의 철제 방패가 몽골 전사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장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방패가 근동 지의 무기 제작소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해석은 우이바트 방패를 단순한 군사적 유물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한다.
남부 시베리아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중세 시대에 무기, 장인, 또는 군사 장비가 엄청난 거리를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방패는 고고학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연구진은 몽골 정복과 관련된 동일한 유형 방패를 단 하나만 안다.
그 방패는 약 70년 전 아랄해 지역 자나다리야 강Zhana-Darya River변에 위치한 중세 정착지 베슈탐-칼라Beshtam-Kala에서 발굴되었다.
몽골군은 13세기 초 호레즘Khorezm 북동쪽 끝자락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이 정착지를 파괴했다.
고고학자들은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정착지 방어벽 근처에서 유사한 방패를 발견했다.
격동의 시대 무기
확실한 고고학적 맥락이 부족해 우이바트 방패를 특정 전투와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 방패가 칭기즈칸 후계자 간 내전, 즉 사얀-알타이Sayan-Altai 지역 사람들을 더 넓은 정치적, 군사적 갈등으로 끌어들인 시기에 발견되었다고 추정한다.
한 가지 가능성은 이 방패를 특정 역사적 사건과 매우 가깝게 연결한다.
연구진은 방패 소유자가 1293년 예니세이 키르기스Yenisei Kyrgyz "다섯 부족"을 정복한 원나라 장군 투투하Tutuha 군대에 복무한 키르기스인 또는 몽골 전사였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원정은 중국 원나라 창건자인 쿠빌라이 칸 통치 시대에 원나라가 남부 시베리아 지역을 더욱 확고히 지배하려던 시기에 일어났다.
방패가 이 원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는 없지만 그 시기, 발견 장소, 그리고 더 넓은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그러한 연관성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과학 매체 N+1은 이번 연구 결과를 보도하면서, 1293년 원정이 저자들이 이처럼 특이한 무기가 어떻게 우이바트 초원에 도달했는지 설명하려 할 때 고려하는 역사적 사건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장거리 연결의 드문 생존 사례
이 방패를 소지한 전사가 누구였든 간에, 그것은 중세 남부 시베리아가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뻗은 정치적, 물질적 네트워크와 단절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근동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방어 무기가 결국 하카스-미누신스크 지역에 도달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키르기스인이나 몽골 전사 손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셀랴닌과 미트코한테 우이바트 방패는 전쟁뿐 아니라 몽골 시대 중앙아시아와 남부 시베리아를 연결하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다.
Poselyanin, A. I., & Mitko, O. A. (2026). A Mongolian age iron shield from the Khakass-Minusinsk region. Archaeology, Ethnology and Anthropology of Eurasia, 54(3), 67–76. https://doi.org/10.17746/1563-0102.2026.54.3.067-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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