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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대따시 구석기에 부친다, 뜬구름 거대 담론 걷어칠 때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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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도산유적 출토품(38.5×12.8×9.7cm, 5,225kg) 대따시 구석기. 무게 5킬로그램이면 손목 나간다. 대체 어디가 썼단 말인가? 사진은 문세영 선생 계정에서 퍼온다.

 
인류문화사, 특히 구석기 변태 양상을 보면 초기에는 큼지막한 도구를 맹글다가 서서히 도구가 작아지기 시작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왜?

내세울 거 없는 놈들이 이대근 식 팔뚝자랑이라, 이 친구들 주특기는 걸핏하면 웃통 벗고선 덩치 자랑 알통 자랑이라, 그러다가 이게 아닌가벼? 우리가 너무 무식했나봐 하고선 잘게잘게 쓰는 도구로 발전해 나간다. 

주먹도끼니 하는 종류가 그 생명이 길기는 하다만, 실은 무식한 시대 무식한 도구다.

내 아무리 생각해도 주먹도끼는 명성과 달리 그 쓰임 많지도 않고 그리 효율성도 없다.

물론 이를 전업 삼는 연구자들이야 노발대발하겠지만 말이다. 

암튼 어찌하여 한국구석기 고고학이 덩치 자랑으로 빠지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만, 근자 연천 전곡리서 내가 보기엔 실용성 제로인 큼지막한 주먹도끼인지 뭔지 암튼 저네들 표현으로는 양면 석기 한 점 나왔다 해서 너도나도 와와! 파동이라.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털보 관장만 해도 와와 우리 이런 거 들어왔어요 하니, 그래 그 마음 이해한다. 왜? 주먹도끼 실물로 자기네 것이 단 한 점도 없다가 대따시한 것이 무더기로 들어왔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암튼 그에 부응해 저쪽 호남 지역 구석기를 집중해서 공부하는 문세영 선생이 우리도 이런 거 있다 해서 소개한 구석기 덩치가 있으니 바로 저것이라 

그의 소개에 따르면 연천 전곡리 유적 출토 초대형 주먹찌르개(42×16×11.9cm, 약 10kg)와 비견할 만한 화순 도산유적 출토품(38.5×12.8×9.7cm, 5,225kg) 이라 하거니와

나는 언제나 기능을 묻는다.

왜 기능을 묻지 않느냐 따지면 우리도 고민 많이 한다는 말을 하는데, 솔까 무슨 고민을 어찌 하는지 뭐 하나 제대로 밝혀낸 게 있어야지?

암튼 전곡 것도 그렇고, 저 화순 것도 그런데 저리 무식한 것으로 무얼 했단 말인가?

두개골 내려 치기 딱 좋다. 

우리 고고학 현장은 아예 분석은 담을 쌓다시피 했는데 제발 뭐라도 걸릴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잔류물 분석 시도라도 해주라 응?

그 무수한 갈돌 갈판 누구더라? 저 멀리 미국으로 나가 교수하는 한국 어떤 여성 고고학도가 10여 년 전에 한 번 제대로 각잡고 분석해 볼끼라고 들이댔더니 

아뿔싸!

분석 대상 거의 다 모조리, 것도 한 번도 아니요 서너 번씩 쏵쏵 물청소하고 솔로 박박 문질렀다더라. 

저런 돌삐류야 앞으로도 얼마든 나올 것이니 제발 분석 좀 해 주라 응?

혹 아는가? 

녹말 가루라도? 혹 동물성 지방이라도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왜 이런 기본을 안 한단 말인가? 

이런 기본조차 하지 않으면서 한국 고고학은 무슨 거대 담론이 그리 많은가?

이 놈도 저 놈도 사회 구조랜다. 

뭐 분석된 게 있어야 구조건 나발이건 논할 것 아닌가? 
 

 
대체 무엇을 근거로 저리 담대한 구조론을 들고 나온단 말인가? 

무슨 구조? 무얼로 무슨 구조를 탐한단 말인가? 
 
장태藏胎가 한반도 개발품이라는 전제가 태실 문화 성장을 봉쇄하고 지진구 신화를 낳았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4-205

장태藏胎가 한반도 개발품이라는 전제가 태실 문화 성장을 봉쇄하고 지진구 신화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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