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언제 그랬냐 바락바락 아니라 우길 놈 천지라 하겠지만
아니긴 무슨 개뿔?
진흥왕 순수 관련 논문들 읽어봐!
단 한 놈도 그 규모를 논한 놈 있는지?
한 놈도 없어.
그러고선 매양 하는 말이 이때 왕을 수행한 인물, 곧 수가 명단이 어떻고저떻고 하는 헛소리밖에 없어.
그 수가 명단, 20명밖에 되지 않아!
그래 순수비는 아니지만 이른바 창녕 척경비 봐바. 거기 등장하는 왕을 따라간 관료도 50명도 되지 않을 걸?
그래서 진짜로 20명, 혹은 50명 안팎으로 쫄래쫄래 벤또 싸들고 소풍 갔냐고?
벤또 여행이랑 순수巡狩를 왜 차별해야 하는가?
문제의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이 달라지면 논문 수준이 달라진다.
벤또 명단 두고서 거칠부가 어떻네 김유신 할아버지가 어떻네 이딴 소리는 개돼지나 하는 말이다.
그게 어찌 역사연구이겠는가?
그렇다면 진짜 왕의 순수 행차는 어떠했는가?
맨 앞에 첨부한 사진이 정조의 화성행차 장면이다. 일부다. 극히 일부다. 그렇다면 전체 규모는?


무지막지했다.
정조 시대보다 1천 200년이나 더 거슬러 올라간 신라시대에는 안 그랬다고?
이런 놈은 붙잡아서 곤장을 쳐야 한다.
역대 제왕이 움직이면 기본 규모가 저랬다.
저 많은 수행원은 어디서 묵고 어디에서 싸고, 무엇을 먹었는가?
전부 현지 조달이 기본이었다. 물론 서울에서 싸가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어찌 다 싸들고 다니겠는가?
지나는 지역마다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공급했다.
똥 싸는 것도 현지에서 다 치웠다.
그러니 저런 행차가 한 번 지나는 지역은 살림이 거덜났다. 거지가 됐다.
제발 뭐 하나 논문 쓰고 싶거덜랑 제발 이면 좀 보아주길 바란다.
비문에 적힌 몇 글자로 사기 치는 일 그만 해라.
순수巡狩를 소풍으로 아는 자들, 진흥왕의 경우
순수巡狩를 소풍으로 아는 자들, 진흥왕의 경우
진흥왕 순수비 나온 김에 더 웃기는 이야기 하나 더 하겠다. 진흥왕 순수비에는 진흥왕이 저런 산꼭대기에 행차할 때 왕을 수행한 신료들 명단이 있다. 왕을 따라 쫄쫄 따라다니는 이런 일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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