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 Summary
Excavations of an ancient tomb located in Haman-gun, Gyeongsangnam-do, in the south-central inland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revealed that it dates back to the 5th or 6th century AD and was within the sphere of influence of the Daegaya Kingdom. The tomb was found to consist of a main chamber for burying the body and an auxiliary chamber for burial goods.

경상남도(도지사 박완수)가 최근 함양 백천리 고분군 발굴성과라 해서 공개했거니와 에두를 것 없이 그 보도자료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한 한자 병기는 내가 했다.
경남도, 함양 백천리 고분군 ‘최대 규모 석곽묘’ 확인
- 백천리 19호분서 고분군 내 최대 규모 석곽 확인... 봉분 직경 약 20m
- 주곽 체적 20㎥ 이상... 대도·철촉 등 무기류와 대가야양식 토기 출토
경상남도(도지사 박완수)는 ‘2026년 역사문화권 중요유적 발굴 조사 사업’으로 추진 중인 ‘함양 백천리 고분군 19호분’ 발굴 조사에서 백천리 고분군 내 현재까지 조사된 석곽묘石槨墓 중 가장 큰 규모의 고분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19호분은 호석護石과 주구周溝가 설치되지 않은 반구상反球狀의 원형분으로, 봉분의 직경은 약 20m에 이른다. 조사결과 봉분은 여러 차례 성토盛土와 다짐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주곽主槨과 부곽副槨을 동시에 축조한 뒤 기초부를 함께 성토하고, 이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밀봉․성토한 것으로 나타나 가야 고총·고분의 축조기술을 밝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도는 이번 발굴 조사 성과를 검토하기 위해 11일 오후 3시 학술자문회의를 개최한다. 이어 14일에는 일반인과 학계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발굴현장 공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함양 백천리 고분군은 5~6세기 함양지역 가야세력이 조성한 중심고분군으로, 20여 기의 봉토분이 분포해 있다. 대가야문화권에 속하면서도 독자적인 가야 정치체의 성격과 대외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매장주체부는 주곽과 부곽이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배치된 반지상식 수혈식竪穴式 수석곽묘이다. 주곽은 길이 약 7.2m, 너비 최대 1.4m, 깊이 약 2.3m로 내부 체적이 20.77㎥에 달한다. 이는 백천리고분군에서 확인된 석곽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전체 가야 고총·고분의 매장주체부와 비교해도 대형급에 해당한다.
주곽에서는 대도大刀 1점과 철모鐵矛 2점, 철촉鐵鏃 55점, 재갈 1점 등 다량의 무기류와 마구류·관棺 부속구가 확인됐다. 부곽에서는 발형鉢形 기대器臺와 장경호長頸壺, 단경호短頸壺 등 토기류가 집중적으로 출토됐으며, 특히 대가야양식 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19호분의 전반적인 축조과정과 주․부곽의 밀봉 성토기법, 봉분 조성과정 등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특히 중대형급 봉토분과 고분군 내 최대 규모 석곽, 다량의 무기류와 대가야양식 토기가 함께 확인됨에 따라 5~6세기 함양지역 가야세력의 위상과 주변 가야세력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영철 경남도 문화체육국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백천리고분군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석곽묘 가운데 최대 규모의 고분이 확인돼 함양지역 가야세력의 성장과 위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했다”며, “앞으로로 도내 가야유적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지속하고, 그 성과를 도민과 적극 공유해 가야유산의 보존·정비와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남도는 역사문화권 중요유적 발굴조사 사업을 통해 도내 가야유적의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지속 규명하고 있다. 2026년에는 전국 8개 시도 32건 가운데 경남이 8건, 총사업비 19억 4천만 원(국비 9억 7천만 원)을 확보해 전국 최다 사업 건수와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했다.
※ 첨부: 역사문화권 중요유적(함양 백천리 19호분) 발굴조사 1부.
***
간평한다.
이런 의미 없는 발굴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며,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어떤 무덤 팠더니 뭐가 나왔다. 그것을 남긴 주체는 A라, A의 이 지역 지배권을 확인하며, 부장품 양상으로 보아 이 지역 지배층에 속하며, 그런 가운데서도 지역색이 있다!
So what?
하다 못해 매장주체부 바닥 흙을 모조리 수거해 잔류물 분석을 하는 것도 아니요, 그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입고 살았으며, 그것이 한국문화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밝혀주는 것도 아니며
철기들 탄소 구멍 파고 들어가 연대 측정한 자료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어니와, 나는 저런 발굴조사를 이제는 더는 의미 없다고 본다.
방식을 바꿔야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발굴조사 기관은 어디야? 표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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