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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총은 1921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발굴 이래, 2000년대 국립박물관에 의한 재발굴 조사를 거쳐 그 면모는 드러날 대로 드러났다.
더구나 그 무수한 경주 일대 신라 무덤 중에서도 유일하게 그곳에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글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이사지왕尒斯智王이며, 그가 바로 자비마립간이다.
저 이사지가 곧 자비마립간임은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첫째 무덤을 만든 시기가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말하는 자비마립간 사망 시기 서기 479년이랑 딱 맞아 떨어진다.
둘째 그 무덤 규모와 그 출토하는 껴묻거리 양상이 저 시대, 그러니깐 자비마립간을 필두로 해서 그에서 멀지 아니하는 전후의 마립간이어니와, 저 시대 유일한 미싱 링크가 자비마립간이어니와, 그런 까닭에 이사지는 자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용 그림은 눈동자를 그려야 완성하는 법.
그 눈동자에 이제 우리는 자비마립간이라는 문패를 박는다.
왜 이사지는 자비이며 자비일 수밖에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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