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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금관총 자비왕릉] (2) 마립간 시대 유일한 미싱 링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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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조 4세기 중후반 이래 6세기 초반까지 대략 150년 정도는 그 왕호를 마립간麻立干이라 썼다 해서 마립간 시대로 부르기도 하거니와, 그렇다고 저 시대 군주를 왕이라 하지 않았느냐 하면 천만에!

저 시대도 왕이라 했으며, 그 왕 칭호 중 하나로써 순수 신라식으로 마립간이라 했을 뿐이니 저 마립간 의미는 김대문 말을 빌리자면 말뚝왕이다. 

신하는 군주를 중앙에 세우고 그 좌우로 도열하게 되거니와, 그 북쪽 정중앙 가운데 말뚝처럼 박혀서 그 앞쪽으로 전면 나열한 신하들을 남면南面한다 해서 저리 부른 것이다.

구체로는 나물(내물)왕 이래 지증마립간 시대를 일컬으니, 이 마립간 시대 재위한 왕들을 순서대로 보면 나물왕-실성왕-눌지왕-자비왕-소지왕-지증왕의 6명이다.

저들 중 유일한 돌발이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이라, 왜 유일한 예외라 하는가?

저 자비慈悲는 누가 봐도 불교 핵심 교리에서 따온 순한문식 이름이거니와, 저 시대 저런 왕 이름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런 불교식, 혹은 다른 순수 한문식 신라사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법흥왕 이후부터이니와, 법흥이 불교식 왕호 혹은 그런 색책을 농후하게 풍기는 데 견주어, 그 이후 진흥-진지-진평-선덕-진덕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중고기 眞 혹은 德 계열은 도교 시호라, 이는 도교의 최고 인격체 진인眞仁 혹은 노자 도덕경道德經 계열이라, 저 중에 德은 유가 색채일 수도 있으나 나는 제외한다.

암튼 저 자비왕 시대에 저런 불교식 왕호가 있을 수가 있는가?

천부당만부당이라, 그렇다고 하는 것은 석가모니 이전 불교를 말함과 같고 예수 이전 기독교, 마호메트 이전 무슬림을 말하는 일이랑 진배없이 천부당만부당하다.

따라서 자비왕이라는 왕 이름은 훗날 역사를 정리하면서 올라가 붙은 불교식 이름이며, 그의 당시 자비라는 이름이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의 본명, 곧 신라인들이 당시 신라식으로 붙인 이름은 무엇인가?

삼국사기 삼국유사 어디에서도 그 본래하는 신라 이름이 없다!

이는 다른 마립간 시대 왕들과 왕청나게 다른 점이다.

나물 실성(그의 다른 이름을 보금인가로 불렀다는 분주가 삼국유사 왕력편에 보인다) 눌지 소지 지증 모조리 다 신라 이름이다.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의 경우 저 시대에 저리 불렀을 리는 없고, 그의 본래 이름은 비처毗處라 이 이름이 본래 이름이다.

그것이 훗날 역사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한문식으로 그럴 듯하게 소지로 둔갑했을 뿐이다.

지증智證이란 이름은 이 자체로 보면 실로 그럴 듯한 한문식 색채를 풍기지만, 천만에, 저건 그의 본래 순수 신라 이름 지대로智大路, 지도로智度盧[혹은 至都盧], 혹은 지철로智哲老를 저런 식으로 포장한 훗날 표기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지증 역시 순수 신라식 이름에서 발상해 그 비슷한 음을 빌린 훗날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도대체 저 자비왕만큼은 왜 저런 이름만 남았는가 이상하지 않은가?

왜 그만이 신라 이름이 없을까?

나는 신라사를 바라볼 때 이 점이 항용 체증처럼 남았다.

그 체증이 비로소 풀렸다.

세상에 나.

마립간 시대 신라 왕 이름의 유일한 구멍, 그 미싱링크를 금관총이 채워줄 날이 있을 줄이야? 

그의 본래 이름이 이사지尒斯智였다!

 
[금관총은 이사지尒斯智 자비왕릉] 세 번째로 주인공을 확정한 삼국시대 왕릉
https://historylibrary.net/entry/isagi

 

[금관총은 이사지尒斯智 자비왕릉] 세 번째로 주인공을 확정한 삼국시대 왕릉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다.하도 개소리가 넘쳐나니 바로잡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결론한다.저 이사지왕尒斯智은 신라 왕조 제20대 군주 자비마립慈悲麻立干(재위 458. 8월~479년 3월 12일)이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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