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자작나무는 한국문화사 대서특필해야 할 사건이라, 무엇보다 그 다기능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개중에서도 제지발달사에서 대서특필하고 호외로 발행해서 현창해야 할 사건이다.
자작나무는 시대를 통괄하고 그것이 자생하는 문화권에서는 거개 다 저 종이 대용 기능이 있거니와, 불경만 해도 그것이 동아시아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고산지대를 통과하면서 자작나무 껍떼기 종이에다가 기록하는 시대가 있었으니, 그 실물 자료가 근자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알려진 일도 있다.
혹자는 한반도에서 그 자생지가 함경도 일대임을 들어, 나아가 신라가 그것을 저처럼 활용하는 문화기반이 돌출이라 생각하기 십상인 모양이라, 이는 그네가 고고학적 검토를 충분히 행하지 못한 까닭이지, 본래 자작나무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신라는 내물왕 무렵 동해안을 따라 함경도 지방으로 치고 올라가면서 저 자작나무를 주목했으니, 현재까지 우리한테 주어진 자료에 의하건대 이미 황남대총 시대에는 그것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앞서 든 모자 장식판 아랫단을 대는 용도로 활용했다는 것이니, 우리가 왜 이를 주목해야 하는가?
저 황남대총 단계가 현재까지 우리한테 주어진 가장 초기, 가장 이른 시기 신라의 자작나무 공예품 활용인 까닭이다.
저 황남대총은 만든 시점을 두고 고고학계 논란이 요란하거니와, 각인각색이라, 다만 한 가지 4~5세기 무렵에 등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자작나무가 대략 100년 내지 200년이 지난 6세기 초반 단계 천마총에서 종이 도화지로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천마도 장니 재료가 바로 그것이라, 이로써 본다면 신라는 황남대총 단계에서 이미 자작나무를 공예품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그런 기반 위에서 100~200년이 지나서는 마침내 종이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한반도에 종이가 언제 도입되었는가? 그 초기 실물은 전연 남아있지 아니해서 알 수가 없지만, 그 초기 단계 문자 생활 혹은 회화 재료로써 저 자작나무는 4세기 무렵에는 확실히 자작나무 껍데기가 정착해 있음을 본다.
천마총 단계 도화지로서의 자작나무가 독특?
웃기는 소리다.
황남대총까지 아울러야 비로소 그 실체에 우리는 어느 정도 다가선다.
신라가 함경도 진출을 통해 얻은 부산물 중 하나는 바로 자작나무였다.
뭔가 북방계 문물이 보였다 하면 무턱대고 고구려 운운하지만 개소리다.
신라가 북방계 문물을 접하는 통로는 고구려라는 단수가 아니었다.
무수한 통로가 있었고, 개중에서도 대서특필해야 할 통로가 바로 함경도로 이어지는 저 동해안 루트다.
계속 말하지만 이 동해안 루트는 고구려랑은 눈꼽만큼도 관계없다.
[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spinoff3) 신라 백화수피 이해를 위한 몇 가지 전제
https://historylibrary.net/m/entry/spinoff3
[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spinoff3) 신라 백화수피 이해를 위한 몇 가지 전제
천마도 장니 백화수피白樺樹皮, 그것이 자작나무임을 확정 혹은 추정하는데 결딴하는 다음과 같은 전제 혹은 확인이 매우 중요하다. 첫째, 그 자생지는 한반도에서는 함경도 지방이라는 사실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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