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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사천 목씨랑 손잡고 태안 앞마다를 탈출한 진주 형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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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서 사천 목씨 이야기를 했지마는, 지금의 경상남도 사천항을 출항해 개경으로 향하다 침몰한 이번 마도 6호선에서는 진주 형씨晉州刑氏도 모습을 드러낸다.

목씨랑 마찬가지로 형씨 또한 단본에 지금도 소수 족단族團이라, 2015년 인구조사 기준 7,239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하니 사천 목씨와 거의 같은 규모다.

같은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들로 강감찬과 동시대 인물로 그 유명한 강민첨을 필두로 하는 강姜 말고도 정鄭씨, 하河씨, 류柳씨, 소蘇씨가 있지마는, 그에 견주어서도 족세族勢는 적어도 쪽수로는 약하다.
 

마도 6호선 출수 고려시대 목간 자료들

 
저네들 족보에 의하면 이 가문 시조는 당나라 태종 때 고구려 영류왕 요청으로 입국한 형옹邢顒이라 하지만, 믿을 수는 없고, 실질 중시조가 고려 명종 시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형방邢昉을 삼는 듯하며, 그 후손 형공미邢公美가 충렬왕 때 왜구 정벌에 공을 세워 진양군晋陽君에 봉함을 받으면서 이를 관향으로 삼았다 한다. 

명종이면 재위 기간이 1170~1197년이라, 예서 관건은 그 가문 일원임이 분명한 마도 6호선 목간의 연대가 되겠다. 

저 진주 형씨가 이 난파선 목간에는 ‘반성班城 형지邢遲◆'라 해서 반성으로 등장하거니와, 이 반성이 진주의 옛이름임은 말할 나위가 없겠다.

이 일대가 조선 시대 전기까지는 진주목 반성현班城縣이라 했으며 이 이름은 지금도 남았으니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과 이반성면 지역이 그것이다. 곧 이 반성면 일대가 곧 고려시대 반성 중심지가 되겠다.

문제는 마도 6호선 침몰 시기. 이는 저 진주 형씨가 언제쯤 중앙 정계에 진출하느냐를 가늠할 때 매우 중요하다.

다만, 연구소는 그 시기를 특정하지 못해 5호선을 1208년(고려 희종 4년)으로 특정한 데 견주어 차이를 보인다.

중요한 점은 아무튼 12~13세기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저때 진주 형씨가 비로소 중앙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앞서 말한 사천 목씨도 똑같다. 

결국 12~13세기 교체 무렵 지금의 경남 일대 남해안에 세거하는 족단들이 앞다투어 중앙 정계로 진출한다는 사실인데, 이를 어찌 보아야 할까?

진주나 사천이나 결정적으로 무신집권기 집권 최씨 집안 본거지나 다름 없거니와, 가신으로 출세한 것이 아닌가 짐작하지만, 이 대목에 대한 탐구를 나는 뒤로 미룬다. 

나아가 그에 앞서 고려 현종인가? 어린 시절 유배생활을 한 데가 저쪽이었을 것이다. 
 
조선조 제1의 가문 사천목씨, 그 조상을 태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리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cacheon-mok

 

조선조 제1의 가문 사천목씨, 그 조상을 태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리다

일반에는 그다지 친숙한 이름이라 볼 수는 없겠지만 내 세대에 친숙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목요상이라는 분이 있다.睦堯相이라 쓰고 대한민국 제11·12·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1935년 생이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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