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는 여러 모로 훗날 고려 혹은 조선왕조와는 다른 시스템을 구비하는데 개중 하나가 저 왕자 시스템이다.
조선왕조의 경우 익히 알려졌듯이 왕과 그 정비 사이에서 난 아들들은 대군大君이라 해서 관위 품계가 없다.
예서 무품계라는 말은 상것이라는 맥락이 아니라 신성 초월이라는 뜻이라, 품계로 따질 수가 없어 정1품 이하 그 어떤 관료들보다 상위에 위치한다.
그래서 길을 가다 저런 대군을 만나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야 했다. 공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요상한 점은 그렇다고 후궁 자식들은 군君, 혹은 옹주 또한 무품계라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무품계 정점에는 말할 것도 없이 왕과 왕비가 위치한다.
왕이야 언터처블 넘버원이라 그렇다 치고, 그렇다고 해서 대군과 공주는 물론이고 군과 옹주까지 무품계라는 사실은 실은 말이 되지 않아서 품계로만 보면 왕과 대군과 공주와 군과 옹주가 같은 반열이다.
이건 분명히 문제인데, 이걸 정비했어야 하지만, 조선 왕조는 채 정비를 하지 못하고 나라를 말아먹는다.
예컨대 왕과 신료들 사이에 저들 왕자와 공주 옹주 품계를 별도로 설정했어야 하지만, 그러지를 못했다는 뜻이다.
이것이 더욱 이상한 점은 정비를 제외한 후궁들은 엄격히 품계를 두어 차별했다는 사실이다. 이 후궁들은 정1품을 필두로 품계가 아주 다양했다.
이것이 왜 이상한가?
어미는 남자들 관료 시스템에 맞추어 각기 품계를 주었는데, 그에서 난 군과 옹주는 품계가 없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조선왕조가 씨줄날줄 꽉 짠 시스템 같지만, 찾아보면 저리 허술한 대목이 적지 않다.
조선시대 대군과 군은 관직에 진출하지 못했다. 과거도 볼 수 없었다.
이렇게 봉인하는 대신, 그 반대급부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대한 재산 이익을 챙겼다.
예컨대 삼정승이 논 열마지기를 받으면, 저들은 백 마지기를 하사받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저런 왕의 아들들이 출사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을 더러 보는데, 웃기는 소리다.
이건 왕의 사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위들 역시 막대한 재산상 이익을 챙겼으며, 그걸로 호의호식하며, 음풍농월이나 일삼았다.
하지만 신라는 달랐다.
조선시대 관념으로 대군에 해당하는 적통왕자들도 차기 보위를 이을 태자를 제외하고서는 모조리 어느 시점에 왕자 신분을 상실했다.
상실하고선 다른 신료들이랑 마찬가지로 관직에 진출해 공적을 다투었다.
물론 이에서 특혜는 있었다.
왕의 아들이라 해서 출발선 자체가 달라, 남들이 박박 기어 저 밑바닥에서 출발하는데 견주어 왕자들은 아무리 꼬맹이라도 재상급 혹은 대장군급에서 출발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들이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들들이었다.
김유신과 짜고서 대권을 장악하고 보위에 오른 김춘추는 재위 2년 3월에 맏이 법민法敏을 태자太子로 세우면서
다른 아들들은 모조리 재상 자리를 주는데
문왕文王은 이찬伊湌으로, 노차老且는 해찬海湌으로, 인태仁泰는 각찬角湌으로,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은 각각 이찬이라는 품계를 내린다.
이제 왕자가 아니라 아들들을 신료화해서 신라 관료제 시스템에 넣어버린 것이다.
저에서 둘째 김인문이 빠졌으니, 당시 그는 당나라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어찌 봐야 하는가?
그건 그렇고 저리 되자 아무리 왕자들이라 해도 이제 저들은 왕자가 아니라 일개 신료로서 당시 그 관료사회 최정점 상대등 금강, 그리고 넘버투 김유신 밑으로 모조리 기어들어간다. [넘버 쓰리는 김유신 동생 김흠순이었던 듯 하다.]
저에 불만은 없었을까?
시스템 자체가 다르니 당연하다 했을 수도 있겠고 설혹 불만이 있다 해서 이렇다 할 반론이 불가능했던 것이 저들은 모조리 김유신의 조카들이었기 때문이다.
김유신 가문이 진짜로 신라를 말아먹는 시대로 돌입하고 있었다.
***
뭐 또 저런 시스템을 그 잘난 한국역사학도들은 "신라의 왕권의 초월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개설레발을 치려나? ㅋㅋㅋㅋ
암튼 이 친구들 대가리엔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역사문화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미천왕 고을불리] (3) 압록강 배로 오가며 소금장사를 하는 고구려 왕자 (0) | 2026.07.26 |
|---|---|
| [금관총은 자비왕릉] (6) ‘신라왕은 동시에 일곱’이라는 식칼 물고 월하의 공동묘지를 나타난 국립박물관 (0) | 2026.07.26 |
| [금관총은 자비왕릉] (5) ‘尒斯智王’을 들고 나온 국립중앙박물관 (0) | 2026.07.25 |
| [금관총은 자비왕릉] (4) 스멀스멀 관 뚜껑 열고 기어나오는 귀신 씻나락 (1) | 2026.07.24 |
| 의심이 없는 데서 학문은 썩어 고름이 난다, 춘천 중도 고구려 황금 장신구의 경우 (0) | 2026.07.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