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위 심의는 간사(문화재청 해당 과장)가 안건 내용을 보고하며, 이를 분과위원장 주재로 토의를 부치게 된다.
이를 실피기 전에 한국 무형문화재 제도 변천사 중요한 국면 하나를 짚어야겠다.
이 대목이 문화재 제도사를 하는 쪽에서도 거의 혹은 전연 중요성이 부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획기가 김장 문화 인류무형유산 등재이거니와, 이 김장문화를 통해 한국 무형문화재는 새로운 시대로 돌입했으니, 그건 바로 보유단체가 없다!는 대목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흔히들 무형문화재 제도는 한국과 일본이 개발해 세계 문화재업계에 수출한 것으로 인식하며, 실제 그런 측면이 다대하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그쪽에서 새로 배워 수입하기도 했으니 그것이 바로 저 보유 단체가 없는 종목 지정이다.
저 김장 문화 이전 한국무형문화재는 종목 지정과 그 종목을 전승할 보유단체를 지정했다.
간단히 소꿉장난 시대였다.
예컨대 대패질이 무형문화재로 되었다 치자. 그러면 그 기예능 보유자가 누구인지를 지정했다. 우리가 아는 무형문화재는 다 이랬다.
그랬던 것이 김장문화? 이걸 인류무형유산으로 만들고자 시도하는데 보니, 어랏! 김장문화 누구를 보유단체로 지정할 거야? 가당키나 한가?
그리고 저 제도가 국제 무대로 나가면서 무형문화재 개념 자체도 일대 혁신을 하게 된다.
저 제도 자체의 단초야 한국과 일본이 마련했을지 모르지만, 그걸 수입해 소화하는 국제업계는 역시 감각이 달랐다.
그딴 구멍가게 수준으로는 장사가 될 수도 없고, 문화재라는 개념 자체도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치만들기와 그것을 둘러싼 제반 정신적 문화유산 전체를 무형유산으로 보게 된 것인데 저 김장문화를 시발로 한국무형문화재 역시 와! 우리가 역시 촌것들이었다! 자성하고선 된장 만들기니 뭐니 해서 각종 무형문화재 혁신을 꾀하게 된다.
이 사찰음식 건은 내 기억에 보유단체를 지정한 채로 심의가 올라왔다. 사찰음식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그 단체 이름으로 말이다! (혹 이 대목은 정확성을 기해 관련 자료를 찾아봐야겠지만 이건 훗날 혹 오류가 있으면 교정하기로 한다)
이 문제, 곧 전승단체 보유단체를 지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돈과 직결한다.
일단 지정이 되면 국가 예산이 투입된다. 어디로? 저 보유단체로 말이다.
보유단체를 지정하지 않으면? 특정 단체로 안 내려간다!
한데 문제는 이것도 말뿐이다. 내가 사찰음식 전문단체요 하고선 나서서 돈 달라 하면? 주지 않기 쉽지 않다.
이 문제는 그만큼 심각한데, 이는 결국 저때 좌절한 사찰음식이 최응천 문화재청장 시절에 보유단체가 없이 종목 자체만 지정하는 일로 귀결하거니와, 이 문제점은 나중에 짚기로 한다.
우야둥둥 사찰음식 활성화를 내걸고 활발히 활동 중인 그 단체가 사찰음식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달라! 그리고 보유단체는 우리로 해달라! 하고 문화재청을 통해 문화재위원회 심의에 올린 것이다.
간단한 안건 보고가 끝나고 위원장이 "말씀들 좀 하시죠" 하고선 심의에 부쳤는데, 이 심의는 그 중요성에 견주어 아주 간단히 끝나고 말았다.
이해충돌 소지가 있으니 불교계 인사인 스님은 나가주셨으면 한다는 요청을 내가 왜? 하고 떡하고 버티고선 기어이 자리에 눌러앉은 만당 스님.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를 켜더니 일대 장광설을 펼쳤다.
뭐 폼 좀 잡아야 하고 예의 격식을 갖춰야 하는 회의 자리니 그 정도라 하기는 힘들었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사자후였다.
나를 포함한 다른 위원들은 누구나 다 스님이 왜 사찰음식이 무형문화재가 되어야 할지를 역설할 줄 알았다.
왜?
불교계 대표로 조계종단이 꽂아넣은 현직 승려이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내가 한판 스님과 뜨야할지도 몰랐다.
한데 그 논지가 놀랍기 짝이 없었다.
간단히 결론을 말하면
"이런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걸 왜 문화재위 심의에 올리느냐" 였다.
이 건은 불교에 대한 모독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역정을 냈다.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렇다면 스님은 왜 저리 이 안건 심의 자체를 역정냈을까?
[듣보잡 사찰음식] (4) "나가 달라"는 요청을 정면 거부한 스님 문화재위원
[듣보잡 사찰음식] (4) "나가 달라"는 요청을 정면 거부한 스님 문화재위원
당시 유형문화재와 분리된 무형문화재위는 내 기억에 세 군데 분과위가 있었거니와, 개중 내가 속한 데가 어딘지도 아리숑숑이라, 뭐 전통지식 어쩌고 했더랬다.내가 어쩌고 하는 까닭은 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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