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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무왕-선화공주 판타지] (1) 바보가 된 아버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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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금의 부여 궁남지가 백제 사비시대의 그 궁남지가 아니라 함이 학계의 이른바 정설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아니해서 주변 지역 발굴 성과를 보면 백제 시대 주요한 건축물이 쏟아진다. 궁남지가 아닐까?

 
삼국유사 제2 기이紀異가 저록한 백제 무왕武王 이야기는 그것이 편제된 챕터 전체 제목이 기이한 이야기 모음이라는 의미가 증언하듯이 사실보다는 판타지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판타지란 무엇인가? 간단히 비틀기다. 이 비틀기 주된 대상은 사실史實이다. 그렇다, 판타지는 팩트에 대한 비틀기를 절대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무왕武王'이라는 소챕터 제목으로 정리한 이 이야기는 그의 신이한 출생담에서 시작해 그의 성장 과정, 그리고 성장한 그가 여권 없이 신라 서울로 잠입해 절세미인으로 소문난 신라 공주를 꼬드겨 아내로 맞은 일과 그렇게 해서 알콩달콩 차린 신접살림 황금을 기반으로 삼아 절대 거부가 되고 마침내 최고 권력자가 된 과정, 그리고 그 둘이 미륵사를 창건한 이야기로 구성한다.

세상 모든 위인 혹은 영웅은 아버지가 없으니, 더욱 정확히는 멀쩡한 아비를 없는 것으로 죽여 버리는 이른바 살부殺父 신화를 얼개로 삼거니와 이 점에서 무왕 역시 마찬가지라 애비가 없다!

물론 없을 수가 있겠는가? 멀쩡한 바이오로지컬 파더를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대신, 그 자리에는 언제나 하늘 혹은 그에 버금하는 존재를 갖다 놓거니와, 박혁거세나 고주몽, 그리고 예수는 그 자리에 하늘을 갖다 놓아 그네들이 천자天子, 곧 하늘의 아들임을 선전하는 구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무왕의 경우에는 하늘 대신 아버지 자리에다가 비린내 진동하는 용龍을 갖다 놓는다.

이렇게 되면 그는 용자龍子가 되거니와, 용은 물 없이는 살 수 없거니와, 그 용이 사는 데를 경사 남지京師南池, 곧, 당시 백제 서울 사비의 남쪽 연못이라 했다. 이것이 곧 지금의 궁남지宮南池, 혹은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그 궁남지인지 뭔지 자신은 없지만, 아무튼 용이 살 정도라면 꽤 규모가 큰 연못이어야 하겠다.

자고로 이런 용은 이상하게도 여자, 것도 이쁜 젊은 여자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무왕 엄마도 재색을 겸비했던 듯, 한창 나이에 과부가 되어 이 연못 가에다가 틀림없이 오두막집을 짓고선 어려운 생활을 계속한 모양인데, 이런 과부를 이웃집 남자들이 가만 두겠는가? 

하지만 최종 승자는 용이었다. 용도 분명 암놈 숫놈이 있을 텐데, 그러고 보면 용의 성별에 대한 논급이 거의 없다는 점이 기이하기만 하다.

같은 상상 속 동물이라 하지만 기린이나 봉황은 암수 구별이 분명해서 기와 린, 봉과 황은 실은 그 암컷 수컷을 일컫는 구별칭이다. 그 점에서 용은 암수 구별이 없다! 

암튼 무왕 엄마 과부를 노린 이 놈은 틀림없이 숫놈이었을 테니, 호시탐탐 이 미색 출중한 과부를 노리고선 마침내 겁탈한 모양이라, 계문강목과속종 어디에도 현생 인류랑 용은 접점이 없지만, 이런 불가능을 뛰어넘는 것이 판타지의 묘미 아니겠는가? 용의 씨를 뱄으니 용종龍種 아니겠는가? 그러니 무왕은 용종이다! 

나아가 이렇게 되면서 정작 바보 등신이 된 존재가 있으니 그가 바로 백제 법왕法王이다.

백제 제29대 왕인 그는 30대 왕인 무왕의 아버지다. 법왕이라는 죽은 뒤에 받은 이름 시호에서 엿보듯이 그는 중국사에서는 남조 양梁나라 창건주 무제武帝를 시종일관 롤모델로 삼아 지상의 불국토를 실현하고자 꿈꾸었으니, 독실한 불교도를 넘어 그것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라고 신민들한테 강요했으니, 

심지어 살생을 금지함으로써 백성이 고기맛을 못 보게 하고, 종묘 제사에도 고기 대신 채소를 썼는가 하면, 같은 맥락에서 사냥하는 매도 놓아주게 하고, 어부들한테서는 그물과 낚시까지 태우라 했으니, 이런 개판이 어딨단 말인가?

모르겠다, 한국이 개고기 먹는다고 갖은 욕을 퍼붓고 가신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토 바르도라면 이런 훌륭한 채식주의자 군주가 한국 역사에 있었음을 알았다면 열렬히 환호하지 않았겠는가? 

백제 신민들로서는 여간 다행이 아닌 점이 이 분이 아주 늙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저런 급진하는 정책을 쓴지 불과 이태만에 훅 갔다는 사실이다. 그가 죽자 신민들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이런 법왕이 무왕의 아버지다. 

따라서 저 무왕-선화공주를 얼개로 삼은 저 판타지는 실은 이 법왕을 아주 바보로 만들어버린 이야기라 하겠다. 멀쩡한 아버지도 없는 것으로 간주해서 아예 죽여버리고, 그 자리에 느닷없이 용을 갖다 놓았기 때문이다.

이 판타지는 저와 같은 살부 신화가 거개 아버지가 아주 볼품이 없을 때, 혹은 아버지가 진짜 누구인지 아리까리할 때 자주 등장하는 패턴이라는 점에서 무왕의 아버지는 전연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아주 이례적이라 하겠다. 

빌빌 싸는 아버지를 죽여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아버지를 갖다 놓은 대표하는 보기를 들자면, 한 제국을 일으킨 망나니 유방을 들겠거니와, 이 망나니 아들이 대권을 잡고 황제로 즉위한 당시에도 아버지는 살아있었지만, 내세울 것이라고는 암것도 없는 촌로라, 영웅담을 만들어내야 하나는 서한 왕조 이데올로그들은 이 아버지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신령스런 뱀, 혹은 정체도 아리송송한 거인을 아버지로 갖다 놓는 폭거를 저질렀다.[그래서 이 아버지는 엄연한 실존 인물임에도 그 이름조차 역사에 전하지 않는다! 불쌍한 아버지] 

나아가 어미가 과부일 때도 저와 같은 살부 신화가 극성을 부리는데, 고주몽 엄마가 그랬다. 그런 과부가 특히 재색을 겸비할 때 이런 판타지가 극성을 부리는데, 관계한 남자가 한둘이 아니라서 그 어미조차도 씨를 준 남자가 누구인지 모를 경우에, 혹은 알고서도 숨겨야 할 경우에 저와 같은 살부 신화가 판을 친다. 

천자의 아들이라는 예수님 역시 비슷해서 그 아버지 요셉은 목수라 했으니, 이런 평범한 목수가 어찌 저와 같은 위대한 인물의 아버지가 될 수 있겠는가? 요셉을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다가 하늘, 곧 야훼를 갖다 놓았다. 그러고 보면 성경에서 이 요셉은 하는 일이 암것도 없어 그 엄마 마리아랑은 천양지차가 난다. 

암튼 저 무왕 판타지는 실은 무왕의 아버지 법왕을 바보로 만든다.

길동이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나 못했지, 저 법왕님은 무왕의 아버지임에도 내가 무왕의 아버지노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쌍한 아버지 법왕! 그러니 왜 그리 하셨어요? 백성이 단백질 섭취는 하게 하셨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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