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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2

최천약이 만들었다는 개구락지 [어떤 개구리였을까?] 숙종~영조 때 조선의 과학기술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자명종 개발로 이름을 날린 사람으로는 전라도 동복의 나경적(羅景績)과 서울에 거주하던 최천약(崔天若)과 홍수해(洪壽海)가 두드러진 사람이었다. 최천약의 기록을 보면 그가 전주에서 희안한 개구리를 만들었던 모양인데 이게 뭔지 도저히 상상을 못하겠다.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이재난고(頤齋亂藁)》에 실린 부분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진주(晉州)의 풍수가(風水家) 문재봉(文再鳳)의 말이, 최천약(崔天若)은 웅천(熊川) 사람이고 홍수해(洪壽海)는 기장(機張) 사람인데 모두 공교한 기능을 지녀 왜관(倭館)에 들어가 금속, 목재, 흙, 돌을 공야(攻冶)하는 방법을 전수 받아 익혀서 갖가지 것에 정밀하고 기발하였는데, .. 2020. 10. 15.
개구리 울어댄 여근곡女根谷엔 무삼 일이? 부산성富山城 아래 경주 여근곡女根谷이다. 여근은 남자의 자지에 상대하는 여성의 거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여근처럼 보이는지 모르겠으나 근리近理한 것만은 틀림이 없다. 여근곡 유래는 아주 오래되어 이미 《삼국유사》에서는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중요한 군사 무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에 의하면 여근곡 인근 연못에서 개구락지가 무리를 지어 울어대어 여왕이 군사를 보내어 무삼 일인가 살피게 하니 백제군사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모조리 때려잡았다 한다. 저 산을 올라가면 만데이에 부산성이라는 유명한 신라시대 성곽이 있다. 신라 문무왕때 만든 곡물저장 창고가 있던 곳이다. 왜 만데이에 곡물 창고를 맹그는가? 지키기 좋자너? 2019.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