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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름4

신석기시대 휴경-화전의 종식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한국 신석기시대. 처음 단계에 휴경-화전으로 시작된 잡곡농경은, 그 후 어떤 변화를 거쳤을지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화전민 촌락에는 농경의 방식이 두 가지가 있다는데, 첫째는 화전하지 않고 경작 관리하는 땅과 화전하는 땅을 함께 가지고 있는 화전민. 이 경우에는 비화전 경작지에 거주지가 건설되고 화전하는 땅에는 가끔 올라가 보게 된다. 둘째는 비화전 경작지 없이 오로지 화전만 하는 경우인데이 경우에는 화전을 따라 옮겨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대개 한번 불을 지르고 농사를 지으면 4-5년 후에는 옮겨야 했다 하므로 신석기시대 화전민도 4-5 년 간격으로 옮겨다니며 휴경-화전을 반복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초의 단계는 순화전민의 단계였을 것이고, .. 2024. 9. 4.
덴마크에서 발견된 천년전 바이킹 화장실 http://www.histecho.com/1000-year-old-viking-toilet-uncovered-in-denmark/ 덴마크 Stevns라는 곳에 위치한 바이킹 거주지(a Viking settlement)에서 덴마크에서는 가장 오래됐을 가능성이 있는 화장실용 2미터 깊이 구덩이가 발견됐다. 이 구덩이는 그 문화층 시료를 방사성탄소연대한 측정 결과 바이킹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건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발견입니다. 우리가 기대한 건 수혈주거지(pit houses), 다시 말해 반지하식 작업장 움막(semi-subterrenean workshop huts)이었는데 지표에서 (처음 그 흔적을 찾았을 때는) 진짜 그런 줄로 알았죠. 하지만 이내 그와는 전연 다른 것임을 알았죠”라고 덴.. 2019. 2. 11.
서울 사대문 안 지하의 비밀 (7)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앞에서 서울 시내에 홍수가 잦았으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가 하면 장마피해로 종각의 종이 토사로 한길 정도 묻힐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승정원일기》 등 당시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한양성의 홍수피해에 대한 기록이 자주 보인다. 기호철, 배재훈 선생이 찾아 낸 당시 기록의 편린을 가지고 지도에 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위 그림에서 A, B, C, D는 우리가 기생충 샘플링을 해서 조선시대 지층에서 기생충란을 확인한 지역이다. 빨간색 선은 청계천과 그 지류이다. 노란색 화살표는 청계천 본류를 가리킨다. 보라색 부분은 성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사서에서 확인 가능한 지역들이다. 경복궁과 경희궁이 포함되어 있다. 기타 노란색 동그라미 부분은 사서.. 2019. 1. 10.
서울 사대문 안 지하의 비밀 (4)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조선시대 한성부의 인구 밀도를 생각하면 당시 토양이 기생충란에 오염이 많이 되어 있는 상태는 당연한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토양이 기생충란에 많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은 한성부에 살던 사람들이 그 기생충에 많이 감염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기생충에 계속 반복적으로 감염되었을까? 조선시대 한성부 사람들 사이에 이렇게 기생충 감염률이 높게 유지되는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까? 현대 임상의학에서는 어떤 감염성 질환이 발생했을때 감염경로 및 감염원를 판단하기 위해 해당 환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데 이것을 역학조사 (epidemiological study) 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선시대 한성부 토양.. 2019.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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