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금석문4

[五九自述] 내가 말하는 내 금석문 연구성과 1. 북한산 순수비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진흥왕 순수비를 나는 봉선비封禪碑로 되돌림으로써 추사 김정희를 기준으로 200년간 지속한 진흥왕 순수비에 대한 이해 전반을 흔들었다. 2. 공주 송산리 고분군 중 제6호분에서 출토한 명문전銘文塼을 기존 압도적인 판독인 ‘梁官瓦爲師矣’에서 ‘瓦’를 삭제함으로써 이 6호분 외에도 무령왕릉 전축분塼築墳의 태동 비밀을 풀었다. 3. 武寧零王陵 출토 묘권墓券 두 군데서 보이는 ‘大墓’는 지금의 무령왕릉이라는 특별한 무덤 하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리 고분군이라는 웅진도읍기 백제시대 그들 王家의 집단묘역이며, 더구나 같은 문맥에서 한 차례 보이는 ‘등관대묘登冠大墓’의 ‘등관登冠’은 지금의 송산리 고분군을 지칭하는 웅진도읍기 백제시대 지명임을 구명했다. 4. 廣開土王碑.. 2020. 11. 20.
김일권 박사의 ‘신라 금석문과 신라본기의 천문역법사 고찰’ 토론문 *** 내 기억에는 2013년 7월, 신라사학회 발표문을 토론했는데, 토론 대상인 이 논문은 〈신라 금석문과 「신라본기」의 천문역법사 고찰〉 (Silla Astronomy and Almanac on the Silla-bongi and Epigraphs) 이라는 글이다. 이 논문은 훗날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신라문화》 42호에 같은 제목으로 실렸다. 김일권 박사의 ‘신라 금석문과 「신라본기」의 천문역법사 고찰’ 토론문 김태식 연합뉴스 발표자는 평소 장대한 논문을 즐기는 편이거니와 이번 논문 또한 그에 해당해 실로 장대하다. 발표문 성격을 보니 신라 천문역법사에 대한 통사를 겨냥한 느낌을 준다. 글은 세부로 들어가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니 첫째가 ‘역법’이고 두 번째가 ‘시간’이.. 2019. 7. 19.
도선국사 등 뒤편에서 읽어낸 문자자료 오늘 아침 우리 공장 문화부에서는 박상현 기자가 작성한 아래 기사를 송고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된다. 신라 명필 김생 글씨 추정 비석 발견…"유일한 친필"송고시간 | 2019-05-16 06:37박홍국 교수, 김천 수도암 '도선국사비'서 22자 판독정현숙 박사 "김생 글자 집자한 태자사비 글씨와 유사" 문제의 표석에 '개창주 도선국사開刱主道詵國師'라는 글자 뒤편에 무수한 글자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마모되고, 그러는 가운데서도 현재 육안으로도 대략 10글자 남짓 파악된다는 점을 나는 공개한 적이 있다. 마침내 박홍국 선생이 판독을 시도했나 본데, 저 기사가 종합한 것은 그 판독에 대한 중간 결산 정도가 아닌가 한다. 다만 김생金生 서체를 운위하는 대목에는 나 자신으로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2019. 5. 16.
냉수리비는 초기 문자생활 자료가 아니다 고대사로 먹고산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재음하면 새빨간 거짓말로 들통나는 일이 한둘이 아니어니와, 신라 문자 생활사로 국한해 말한다면, 현재까지 발견된 초기 신라 금석문에 드러난 문장을 그들의 초기 문자 생활자료로 설명하는 압도적 견해도 그것을 대표하는 거짓말 중 하나다. 현재까지 신라 금석문 발견 현황을 간단히 정리하면서 그 초기 자료들을 볼진대, 포항 영일 냉수리 신라비(이하 냉수리비)가 추정대로라면 신라 지증왕 재위 4년(503), 울진 봉평 신라비가 대략 이십년가량 늦은 법흥왕 11년(524)으로 건립시기가 추정되거니와, 현재까지 발견된 신라 초기 금석문으로는 가장 최근에 발견된 포항 중성리비는 냉수리비보다 몇년 빠른 걸로 본다. 이후 신라인이 남긴 금석문으로 진흥왕 순수비와 같은 시대 창녕 .. 2018. 8. 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