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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흠운10

전밀(轉密) 문노(文努)의 유풍을 따르는 신라 화랑 집단에 소속된 불교 승려라는 사실만 확인된다. 활동시기는 그와 교유한 김흠운(金歆運)이 태종무열왕 2년(655)에 사망한 시점을 고려할 때 선덕~진덕~태종무열왕 무렵으로 판단된다. 삼국사기 권제47(열전 제7) 김흠운 : 김흠운(金歆運)은 나밀왕(奈密王)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2018. 3. 15.
김운(金運) 김흠운의 잘못된 표기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은 김씨다. 이름은 정명(政明)이고 자(字)는 일소(日炤)이다. 아버지는 문호왕(文虎王)이고 어머니는 자눌왕후(慈訥王后)이다. 비는 신목왕후(神穆王后)이니 김운공(金運公)의 딸이다. 신사년에 즉위해 11년을 다스렸다. ☞김흠운 2018. 3. 7.
문노(文努) 화랑세기 문노 전 : 8세 문노(文弩)는 비조부공(比助夫公) 아들이다. 어머니는 가야국(加耶國) 문화공주(文華公主)인데 문화공주는 야국왕(野國王)이 바친 여자(貢女)라고 한다. 《호조공기》(好助公記)에는 ‘북국왕녀(北國王女)’라고 되어 있는데, 문노는 스스로 가야가 외조(外祖)라고 말했으니, 북국은 가야의 북국일 것이다. 법흥대제가 가야를 나누어 남․북으로 하면서 이뇌(異腦)는 북국왕(北國王)으로 삼고는 양화공주(兩花公主)를 처로 삼게 하고, 청명(靑明)은 남국왕(南國王)으로 삼았다. 얼마 되지 않아 이뇌의 숙부 찬실(贊失)이 이뇌를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 때 호조공(好助公)이 가야에 사신으로 가서 책망했다. 이보다 앞서 찬실은 야국왕의 사위가 되었는데, 문화공주는 생각건대 틀림없이 찬실의 딸일.. 2018. 3. 7.
김달복(達福) 삼국사기 권제47(열전 제7) 김흠운 열전 : 김흠운(金歆運)은 나밀왕(奈密王)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2018.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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