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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령2

일제시대 연희전문의 대학승격 앞에도 썼지만 1920년대, 조선인의 대학을 세운다면 대학령에 따라 연희전문이 대학으로 승격되는 게 가장 현실성 있는 안이었다. 3.1운동 이후 민립대학운동은 전국적으로 모금하여 조선인의 대학을 세운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맨바닥에서 대학을 새로 세우는 일은 일본땅에서도 힘들었다. 일본이 대학령 발효후 제국대학 외에 대학이 된 곳은 거의 모두 기존에 전문학교였던 곳이었다. 특히 의전이 대학으로 바뀐 곳이 많았는데, 1920년대 당시 연전은 대학승격한 도시샤대학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잘 준비된 경우가 아닐까 (학과의 수는 오히려 연전이 많고 당시 연전은 4년제였다). 만약 연전이 세브란스와 합쳐져 대학 승격을 요구했다면 일제는 상당히 곤란했을 것이다. 그 정도 규모의 전문학교가 대학승격을 요구하면 일본 본.. 2023. 6. 18.
조선과 일본- 양자간 차이를 결정해 버린 대학령 식민지시대를 통틀어 딱 하나만 조선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법을 들어보라고 한다면 나는 대학령을 들겠다. 이 대학령에 의하면 제국대학 외에도 다수 대학이 설립되어 고등학력자를 다수 배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음에도-. 이 대학령에 의해 설립된 대학은 1945년 일본이 망할 때까지 조선땅에는 단 하나도 세워지지 않았다. 유일한 대학 경성제대는 "대학령"이 아니라 "제국대학령"에 따라 세운 학교이기 때문이다. 대학령에 의해 다수의 대학이 만들어진 일본 땅에는 그럼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바로 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다. 대학령이 발효된 1919년 이후 일본에는 대학 수가 급증했다. 대학령 발효 후 불과 6년 만인 1925년이 되면 5년 전에 비해 대학수와 학생수가 모두 두 배가 불었다. 이로부터 다시 5년 .. 202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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