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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립대2

민립대 설립운동을 다시 본다 우리나라 일제 식민지사에서 민립대 설립운동의 의의는 대단히 크다. 그 중요성에 비해 현재까지 이 운동의 시작과 실패는 조선인이 대학을 만들려고 했는데 일제가 방해해서 실패했다. 끝. 이 정도 설명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 대학의 문제가 조선과 일본의 30년대 이후 차별화의 모든 근간이나 다름없다. 차별은 개인의 편견에 의해 주어 질때는 그다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차별이 구조화해서 재생산 되게 되어 있을 때가 무서운 것이다. 일제시대 후반부의 조선인 차별은 그런 식으로 구조화했기 때문에 무서운것 인데 그 구조화의 바닥에는 조선땅의 고등교육의 부재가 있었다. 이 부분을 재검토하여 전모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설하고, 전술한 바와 같이 연희전문의 대학승격이 이루어졌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 2023. 6. 18.
민립대 설립운동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 현행 교과서에는 1919년 이후 민립대 설립운동은 실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19년 이후 민립대를 조선인들 손으로 세우려 했는데 일본의 방해로 실패했다. 대개 요지는 그것인데. 틀린 논지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민립대 설립운동의 배경은 필자의 글에서 몇번 지적했지만, 대학령 때문이다. 원래 일본에는 제국대학 이외에는 대학을 둘 수 없었는데 대학령이 발표되면서 사립대학 등의 설립이 허가되어 대학교와 대학생 수가 크게 늘게 되었다. 대학령으로 새로운 대학이 설립되는 것보다 기존의 전문대학이 대학으로 승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대학령에 따라 조선에도 사립대학을 두자-. 그것이 민립대 설립운동이다. 그 내역에 대해서는 필자 글에서 몇 번 쓴 것 같으므로 부연하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의 경우 이 민립.. 202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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