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교과서에는 1919년 이후 민립대 설립운동은 실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19년 이후 민립대를 조선인들 손으로 세우려 했는데 일본의 방해로 실패했다. 대개 요지는 그것인데.
틀린 논지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민립대 설립운동의 배경은 필자의 글에서 몇번 지적했지만,
대학령 때문이다. 원래 일본에는 제국대학 이외에는 대학을 둘 수 없었는데 대학령이 발표되면서 사립대학 등의 설립이 허가되어 대학교와 대학생 수가 크게 늘게 되었다.
대학령으로 새로운 대학이 설립되는 것보다 기존의 전문대학이 대학으로 승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대학령에 따라 조선에도 사립대학을 두자-. 그것이 민립대 설립운동이다.
그 내역에 대해서는 필자 글에서 몇 번 쓴 것 같으므로 부연하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의 경우 이 민립운동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연전과 보전의 승격 문제다.
민립운동처럼 맨바닥에서 대학을 새로 만들어 내기는 일본에서도 쉽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의 경우 대학이 만들어진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연전과 보전의 대학 승격이었다.
연전과 보전은 여러 차례 대학 승격 서류를 만들고 제출하고 반려받고를 반복한 것으로 안다.
연전의 경우에는 1920년대에 여러 차례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보전은 김성수가 1930년대 후반까지도 대학 승격을 집요하게 노렸던 것으로 안다.
이 두 학교가 대학 승격에 실패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고학력자 수는 더욱 차이가 크게 벌어지게 되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악착 같이 승격을 거부했는지도 한 번 살펴볼 만한 일인데 기존의 연구에서 어느정도로 조사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내용에 대해서는 후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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