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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담일기3

당쟁을 격화한 석담일기石潭日記, 류성룡을 씹다 붕당을 증오했지만, 결국 그 자신도 동서 분당 와중에 어느 한쪽에 몸담을 수밖에 없던 율곡은 그 처지가 여로 모로 사르트르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사르트르더러, 네 철학은 실존주의다고 하니, 사르트르는 처음엔 아니다고 길길이 날뛰었다가 나중엔 그래 난 실존주의자다고 선언하고는 실존주의란 무엇인가를 설파하기에 이른다. 일명 경연일기經筵日記라고도 일컫는 그의 석담일기石潭日記가 공개가 언제 되었는지가 나로서는 관심이지만 이 대목은 아직 추적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글쓰기 양태를 보면, 이미 초고 단계에서 이미 주변에 다 알려지기 마련인데, 그 공간이 언제이건 상관없이 그가 쓴 글은 생전에 이미 공개되어 알려졌을 것이며, 더불어 그의 사후 직후에는 이미 석담일기는 그것이 공간되었건 아니건 육필원고는 이미 조정에 .. 2023. 2. 18.
태胎를 찾아서, 율곡이 증언하는 조선왕 선조의 태항아리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석담일기石潭日記》 卷之上 융경(隆慶) 4년 庚午(1570·선조 3) 3월조에 보이는 기사 중 하나다. ○ 임천林川에 임금님 태胎를 묻었다. 임금께서 처음 즉위하실 때 조정 공론이 선대 전례에 따라 땅을 골라 태를 묻고자 하여 잠저潛邸에다가 태의 소재를 물어 그 동산 북편 숲 사이에서 찾아서는 그것을 묻을 곳을 가렸다. 강원도 춘천 땅에 묻으려고 산역山役을 거의 끝내고 정혈正穴을 살폈더니 그곳은 옛날 무덤이었다. 그래서 다시 황해도 강음(江陰 지금의 금천金川)으로 옮겨 터를 닦으니 정혈 수십 보 밖에 작은 항아리가 묻힌 것을 발견해, 그곳도 옛날 무덤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관찰사 구사맹具思孟이 “이는 정혈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단지 작은 항아리뿐이요 다른 것은 없으니 이것 때문에 대역.. 2018. 2. 18.
율곡이 말하는 면신례免新禮, 공무원 신참 신고식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석담일기(石潭日記)》 卷之上 융경(隆慶) 3년 기사(己巳·1569·선조 2) 9월조에 보이는 기사 중 하나다. ○ (선조 임금이) 사관(四舘 성균관ㆍ예문관ㆍ승문원ㆍ교서관)에서 새로 과거에 합격하여 들어온 신진들에게 침학(侵虐·학대)하던 풍습을 혁파토록 명하셨다. 이이가 임금께 아뢰기를 “인재를 양성하는 효과는 비록 하루아침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나, 다만 교화(敎化)를 해치는 폐습은 개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처음 과거에 합격한 선비들을 사관(四舘)에서 ‘신래(新來·처음 온 사람이라는 뜻)’라 지목하여 곤욕을 주고 침학(侵虐)하는데 하지 않는 짓이 없습니다. 대체로 호걸의 선비는 과거 자체를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는데, 하물며 갓을 부수고 옷을 찢으며 흙탕물에 구르게 하는 .. 2018.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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