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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유억불3

탈레반식 폭거로 사라진 불교유물들 한국은 명색이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나라이고 서기 7세기에 이미 인도로 적지 않은 숫자의 승려가 구법여행을 떠났으며 같은 시기 원효의 저술이 동아시아를 뒤흔들고 서기 11세기부터 대장경-교장 조판을 여러 번 반복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남은 게 없냐라는 생각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조선시대 5백년 내내 불교 승려는 중놈이라는 비칭을 입에 달고 살았고, 시도때도 없는 부역에 끌려 산성이라는 산성은 모두 승려가 쌓은 것 같고, 틈만 나면 동네 유림들이 몰려와 구타하고, 부처의 목을 베고, 심지어는 불까지 질러도 나라에서는 말 한마디 안했는데, 어떻게 뭐가 남기를 바라겠나. 탈레반식 폭거를 5백년을 계속했는데 뭐가 남아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임. 초조대장경도 국내에 몇 부 없는데 일.. 2023. 5. 18.
자원쟁탈전에서 본 숭유억불 숭유억불이 사상적, 정치적 동기에서만 검토되지만 사실 여말선초 이래 유가가 불가를 그렇게 탈탈 털었던 것은 그런 동기보다 경제적 동기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한된 자원을 놓고 두 집단이 쟁탈전을 벌인 것인데, 여말선초 이후 두 집단이 다 살아 남기에는 한반도 자원이 넉넉치 않은 단계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때문에 이전에는 공존하던 두 세력은 제한된 자원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게 되고 그 최종 결과가 조선시대 내내 계속 되어온 불교수탈이 아니었나 싶다. 폐불은 중국사에서도 몇 차례 일어나긴 했는데 한국처럼 지속적으로 수백년간 계속된 적은 없다. 아마도 여말선초의 위기, 숭유억불, 그리고 과전법체제 출현은 모두 같은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때 한반도에 우리가.. 2023. 4. 17.
서거정이 말하는 내장산 백양사 단풍철이다. 그런 대명사로 내장산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 내장산에 백양사가 있다. 조선초기 사가정 서거정의 다음 증언은 현재의 내장산 백양사 내력 중 고려말~조선초 일단을 증언하거니와, 이에 의하면, 당시에는 백암사라 일컬은 백양사가 실은 행촌 이암 집안 고성이씨 원찰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 성격이 언제까지 지속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사가정 당대까지 100년이나 이어졌다는 사실을 소홀히 보아넘길 수는 없다. 이는 당대 불교사를 고찰할 때도 여러 문제의식을 고취하거니와, 불교가 일방적인 탄압대상이었다는 데 대한 반론 역시 요즘 만만치 않거니와, 불교가 그리 호락호락하니 당하지는 아니했다. 강고한 유교사회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효용이 있었으며, 특히나 가정 주도권을 장악한 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성들이었.. 201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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