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연암 박지원4 불교에 되치기 당한 박연암[2] 신흥사 중들한테 쫓겨나고 연암집 제3권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가 수록한 박지원 공문서 중에는 그가 양양부사 재직 시절 직속 상관인 강원도순찰사한테 올리는 글이 있으니 연보에 따르면 그가 양양부사가 된 시점은 1800년, 64세 때라, 그해 6월에 정조가 승하하고 두 달 뒤인 8월에 양양부사가 되었거니와 이 글은 부사 취임 100일이 지난 새해에 올린 문서라 하니, 순조 1년, 1801년 새해 벽두임을 추찰한다. 이에서 연암은 관내 신흥사가 각종 불법을 자행하고 있지만, 그것을 제어해야 할 상부, 특히 강원감영과 중앙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을 두둔하고 있다면서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감정을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지금 예조의 관문關文에 “신흥사神興寺의 잡역을 경감한 뒤로 종이에 먹도 마르기도 전에 불법 징수.. 2025. 1. 26. 몹시도 괴로운 연암 박지원 그제부터 연암집 완독에 들어갔다.끝을 볼란지는 모르겠다.아마 어중간에 엎어버리지 않을까 싶다.사진속 제1권과 더불어 전2권이 완결판이다.분량이 만만찮다.민족문화추진회에서 신호열 김명호 옮김으로 출간했다.옛날 풍모가 완연한 판형이다.이미 이 당시 신호열 선생은 불귀의 객이 되고 그 문하생 김명호 선생이 선생과 같이 작업한 원고들을 정리했거니와김명호 선생이야 연암 전문가로 두 마디가 필요없는 발군의 연구자라이걸 내고서 불미한 데가 많다해서인지 아마 다른 상업출판사서 쏵 개비한 판본을 냈을 것이다.그 판본 역시 나는 보유 중이나 서재 어디 있는지 찾기가 곤란해 이 구판으로 접근 중이다.오역 또한 신판에서는 많이 바로잡았다 했다 기억하는데 신판이건 구판이건 일단 독파가 중요하다.이전에 여러 번 완독을 시도했다 .. 2025. 1. 18. 연암 박지원이 말하는 누님 강가 말 세우고 저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銘旌 바람에 펄럭이고 돛대는 비스듬히 미끄러지는데강굽이 이르러 나무 돌고 난 뒤에는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강가에 멀리 나 앉은 산은 시집가던 날 누님 쪽진 머리 같이 검푸르고, 강물 빛은 그날 거울 같았으며, 새벽달은 누님 눈썹 같았다. 빗 떨어뜨린 그날 일 눈물 흘리며 생각하니 유독 어릴 적 일만이 또릿또릿 떠오른다. 그때는 또 그렇게도 즐거운 일이 많았고, 세월도 길 것만 같았다.박지원, 큰누님 정부인으로 추증된 박씨 묘지명[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에서 2025. 1. 3. 참새 쫓는 늙은이, 새참 이고 물 건너는 아낙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확실히 산문에 일가를 이루었지, 그의 문명文名에 견주어 시는 몇 편 남기지도 않았으며, 실제 시 쓰는 일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시에 뛰어들었어도 일가를 이루었으리라 보니, 그런 낌새를 짙게 풍기는 작품이 그의 사후 그가 남긴 시문을 모아 집성한 앤솔로지 《연암집燕巖集》 권 제4가 소수所收한 다음 시라, 글로써 그림을 그린다 하는데 그에 제격인 보기요, 그런 점에서는 유종원보다 못할 것도 없다. 농촌 풍경[田家] 老翁守雀坐南陂 늙은이 참새 쫓느나 남쪽 논두렁 앉았건만粟拖狗尾黃雀垂 개꼬리처름 드리운 조엔 노란 참새 매달렸네長男中男皆出田 큰아들 작은아들 모두 들로 나가는 바람에 田家盡日晝掩扉 농가는 하루가 다 가도록 사립문 닫혔네 鳶蹴鷄兒攫不得 솔개가 병.. 2018. 11. 14.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