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왕릉9 박주미가 묻힌 남양주 성묘成墓 광해군 생모 공빈김씨恭嬪金氏(1553~1577. 6. 13)라면 나는 퍼떡 박주미가 오버랩한다. 성묘 ★★★☆☆ · 역사적 장소 · 진건읍 송능리 산 55 www.google.com 그의 묘는 남양주에 있고 성묘成墓라 일컫는다. 한데 보다시피 품격이 완연히 왕릉이나 왕비릉의 그것이다. 여타 후궁묘와는 위엄이 현격히 다르다. 후궁묘가 저처럼 왕릉에 버금가는 이유는 딱 하나다. 왕을 낳은 여인인 까닭이다. 그 아들은 광해군이다. 한데 아다시피 그 아들은 폐위되어 군으로 강등됐다. 그러니 그 어미 역시 왕의 생모에서 여타 우수마발 같은 후궁으로 전락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가 보는 저와 같은 왕릉급 규모를 갖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저 무덤은 광해군이 왕이었을 시절에 조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기록에 .. 2020. 5. 24. 성덕왕릉 귀부聖德王陵龜趺 성덕왕릉 귀부 聖德王陵龜趺 Tortoise-shaped Pedestal of Tomb of King Seongdeok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6호 Gyeongsangbuk-do Tangible Cultura Property No. 96 慶尚北道有形文化財 第96号 이 귀부는 신라 성덕왕(재위 702-737) 능 앞에 세운 비석 받침돌이다. 거북머리는 깨졌지만, 발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형상을 한다. 귀부 등 가운데는 비신碑身을 꽂은 네모난 홈이 있다. 이에 새긴 거북등 무늬나 당초문唐草紋은 8세기 전반 신라 왕릉에 건립된 귀부 제작 양식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비신과 머릿돌은 없어졌지만 경덕왕景德王 때 만든 것으로 삼국사기에 보인다. 무열왕릉武烈王陵과 서악동 귀부와는 같은 양식이고, 창립사지昌林寺址 귀부.. 2018. 6. 9. 수릉壽陵, 자기가 만든 자기 무덤 2017년 2월, 경주 傳 황복사지 인근을 발굴한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이곳에서 통일신라시대 미완성 왕릉을 발굴했다면서, 그 성격을 가릉(假陵)이라 규정한 조사성과를 공개했다. 보통 제왕이 자기가 죽어 묻힐 곳으로 생전에 미리 만든 무덤을 수릉壽陵이라 하는데, 그런 용어가 싫다 해서 가릉이라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아마도 현대 한국사회에서 널리 쓰는 가묘假墓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데, 그것이 왕릉에 대한 버전이 가릉일 것이므로, 그 명칭이 가릉이건 가묘건, 임시 무덤을 말한다는 점에서 저 용어 역시 문제는 없지 않다. 분명 조사단에서는 저 무덤이 만들다가 어찌된 이유로 중단하고 폐기한 왕릉이라 해서 저리 이름을 붙였지만, ‘미완성 왕릉’이라 하는 편이 훨씬 그 의미를 명료하게 전.. 2018. 2. 11.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