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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5

화상 치료에 쓴 달거리 피, 마왕퇴 백서의 경우 일정 연령이 다달은 여성이면 평균 매달 한번은 겪는 피쏟음을 월경月經 혹은 월사月事라 하고, 달거리라 하며, 영어로는 의학용어로는 Menstruation이라 하지만 대개는 monthly period 혹은 문맥에 따라서는 그냥 간단히 period라 하거니와 남자인 내가 그 고통을 알 수는 없지만, 다만 내가 그와 관련해 이야기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저에서 생산하는 핏물 용도다. 이 이야기로 가장 저명한 일화가 삼국유사가 저록한 원효 설화라, 그에 의하면 친구 의상이가 지금의 양양에다가 낙산사를 세우고, 관음보살을 툭하면 친견한다 하니 배가 아파 나도 관음보살 좀 만나 볼끼라고, 낙산사로 향하다가 냇가를 지나는데 하얀 소복 차림 중년 여성이 월경 핏물이 묻은 옷감을 빨래 하는지라, 목이 마르다 하니, 그 소.. 2023. 10. 26.
월경月經은 생산력 《황제내경·소문편(黃帝內經素問篇)》의 상고선진론편(上古天眞論篇)에 말했다. 여자는 7세에 신기腎氣가 왕성해져 이갈이를 하며 머리털이 무성해집니다. 14세에는 천계天癸가 시작하고 임맥任脈이 소통하며 태충맥太衝脈이 왕성해져 월경이 주기로 나게 되고 자식을 낳게 됩니다. 21세에는 신기가 충만해져 사랑니가 나와 치아 성장이 끝납니다. 28세에는 근골이 튼튼해지고 머리털도 가장 무성하게 자라니 몸이 가장 왕성할 때입니다. 35세에는 양명맥陽明脈이 쇠약해져 얼굴로 초췌해지기 시작하며 머리칼도 빠지기 시작합니다. 42세에는 세 양맥陽脈이 쇠약해져 얼굴 전체가 초췌해지며 머리털은 하얗게 새기 시작합니다. 49세에는 임맥과 태충맥이 쇠약해져 천계가 고갈되고 폐경이 되며 몸도 노쇠해져 출산이 불가능해집니다. 岐伯曰 女子.. 2019. 4. 24.
월경피도 약물, 특히 화상 치료에... 소위 마왕퇴 백서(馬王堆帛書) 중 《오십이병방(五十二病方)》》에 이르기를, “漬女子布, 以汁傅之” 라 했으니, 예서 말하는 여자포란 곧 월경포(月經布)라, 요새 말로 하자면 생리대다. 여자 월경포를 물에 담갔다가 그 배어나온 핏물을 화상 부위에 발라준다고 했다. 당대唐代 명의 손사막(孫思邈)이 정리한 《천금요방千金要方》 권25에 이르기를, “일체 화상을 치료하는 처방 : 처음 증상 때에 곧바로 여인의 정즙을 발라주면 낫는다”(治一切火所傷方 : 初著, 卽以女人精汁涂之差) 고 했다. 이에서 말하는 정즙은 애액을 말하는 듯하나, 전후맥락, 다른 문헌을 종합할 때 월경수일 가능성이 크다. 《오십이병방》이란 중국 전한시대 제후국 고위 관리 집안 공동묘지인 장사(長沙) 마왕퇴 한묘(馬王堆漢墓) 중 제3號 漢墓 출토.. 2019. 4. 8.
No sex during menstruation,《일본서기日本書紀》에 보이는 월경금기月經禁忌 《일본서기》 권 제7 게이코천황(景行天皇, 경행천황) 4년 봄 2월 갑자일(甲子日) 조에는 미노(美農)라는 곳에 간 천황이 이곳에 근거지를 두었다고 추측되는 야사카노 이리비코(八坂入彦)라는 황자(皇子)의 첫째 딸인 야사카노 이리비메(八坂入媛, 팔판입원)를 어떻게 만나 妃로 삼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소개되었으니, 이에 의하면 천황은 처음에는 이리비메(入媛) 동생인 오토히메(弟媛)를 먼저 만나 추파를 던졌다. 하지만 장막까지 불러들인 오토히메(弟媛)는 다음과 같은 말로 천황의 수청 요청을 거부한다. 첩은 성격이 교접(交接)의 도를 바라지 않으니, 지금은 황명(皇命)의 위엄에 못 이겨 잠시 장막(帳幕) 안으로 들었습니다만, 마음이 내키지 않고, 모습 또한 더럽고 누추해 오래도록 후궁에서 모시고 있을 수 없을.. 2019. 4. 6.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 김유신, 춘추 방에 언니 대신 동생 들여보낸 까닭 [중앙선데이] 입력 2016.06.26 00:40 | 485호 23면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이민족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같은 혈통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는 불완전한 민족 통일을 달성했다는 이유로 김춘추와 김유신(595~673)을 싸잡아 비난했다. “김유신은 지용(智勇·지혜와 용기) 있는 명장이 아니요, 음험취한(陰險鷲悍)한 정치가며, 그 평생의 대공(大功)이 전장에 있지 않고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라고 했다. 음험취한은 요컨대 음흉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단재는 그 보기로 그가 김춘추와 처남 매부가 된 사연인 소위 ‘축국(蹴鞠) 사건’을 들었다. 혹독하기 그지없는 이런 평가는 그 이전까지 천 수백 년가량 지속된 만고의.. 201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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