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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8

왕화王化의 밖 제주, 김응남金應南의 경우 1583년, 동부승지를 지낸 김응남金應南(1546~1598)이 제주목사로 임명된다. 보통 무과 출신이 임명되는 제주목사 자리에 문과 출신이 임명되는 일은 이례적이다. 기실 이는 동서 분당이 가속화되던 시점에 '동인의 괴수'로 지목받던 그를 조정에서 떨어뜨려놓으려는 좌천성 인사였다. 이를 두고 사간원에서는 부당함을 논하였다. 그런데... 제주목사 김응남은 오랫동안 경악經幄에서 모시고 있으면서 많은 계옥啓沃을 하였고, 승선承宣이 되어서는 부지런히 있는 힘을 다했던 자로서, 전하께서도 일찍이 믿고 총애하였던 바인데 죄명이 드러나지도 않은 것을 침윤浸潤의 참소만을 치우치게 믿으시고 이매魑魅의 고장에다 던져버리셨습니다. 근래 빈번한 척축斥逐으로 하여 명류名流는 거의 다 없어지고 참소하는 입들이 그 틈을 타서 대성.. 2023. 3. 27.
지방관의 두 가지 자세, 너무 다른 제주목사 최전과 이종윤 1. 조선 성종 때 제주목사로 왔던 최전崔湔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무관 출신인데, 제주목사로 있으면서 온갖 재물을 긁어모아 배로 연이어 실어날랐다고 한다. 이 사람의 동생이 최반崔潘이라는 사람인데, 김제군수로 있으면서 어찌나 포악했던지, 을 보면 김제 고을 사람들이 "내 자식놈"이라고 하며 욕을 했다고 한다. 거기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인데, 어느 날 최전 형제의 아버지가 김제 고을을 들렀다가 채 익지도 않은 보리를 베는 농부를 만났다. 왜 덜 익은 보리를 베냐고 물으니 그 농부가 한숨쉬며 하는 대답이 걸작이었다. 군수가 백성의 고혈膏血을 짜내는 바람에 백성들이 살아갈 수가 없어서 아침저녁으로 도망하여 흩어지니, 어느 겨를에 보리가 익기를 기다리겠습니까? 군수는 그만두고라도, 들으니 그 아비가 늙..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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