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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례12

진실로 미친 시대였던 17세기 도대체 어떻게 하자고 그렇게 죽도록 미치도록 성리학을 팠을까. 어떻게 하자고 그렇게 중국도 없어져버린 고례古禮를 여기다 구현한다고 남들 안보는 책을 죽도록 봤을까. 17세기란 시대는 진실로 미친, 제정신이 아닌 시대였는데, 한국이라는 나라가 수천년, 수만년 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그 최후의 날까지도, 한국인들은 17세기를 두고두고 반성하면서 살아야 한다. 2023. 4. 18.
[발굴조사보고서] 영성위 신광수, 화협옹주묘 《영성위 신광수·화협옹주묘》 고려문화재연구원, 2019 유적은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산 43-19번지 일원으로 주민인 경작중 발견한 석함 안에서 목제 말이 발견됨에 따라 주변 일대에 대한 긴급발굴조사를 시행 한 결과 조선시대 영조대왕의 공주인 화협옹주와 부군인 신광수의 묘가 확인되어 발굴조사되었다. 이 분묘는 이미 1970년대 이장된 분묘이나 주변에 매납한 유물이 들은 석함은 원 위치에 남겨진 관계로 인해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분묘의 묘제는 회곽묘로 부부가 합장된 모습이다. 묘역 바깥으로 곡장을 조성하였고, 무덤 남쪽에 석함과 회곽함이 각각 위치한다. 묘역의 규모는 길이 588cm, 너비 660cm이며 남서쪽 하단부는 이장으로 인해 결실된 모습이다. 두향은 N-62-E로 한강이 흐르는 서쪽을 바.. 2019. 8. 30.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10): 에필로그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약속한 대로 조선시대 회곽묘 관련 선행 연구를 소개한다. 아래 연구에 필자의 글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 먼저 조선초기 상장의례의 변천은 정종수 선생의 중앙대 대학원 박사논문 "조선초기상장의례연구"에 자세하다. 이 논문은 회곽묘만 다룬 논문은 아니지만 조선 전기 주자가례를 도입하는 과정의 논란과 변천에 대해 서술하였다. 고려시대의 석실묘가 조선시대의 회곽묘로 변천해 가는 과정도 자세히 다루었다. 정종수 선생 다음으로 회곽묘의 변천과 관련하여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김우림 선생의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 이야기 (민속원)"를 권한다. 이 책이 나오기 전 김우림 선생의 글은 회곽묘의 변천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글이었는데 이 책에 이전 주장이 알기 쉽게.. 2019. 6. 11.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9)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곽묘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부분의 하나는 회곽묘 구조가 처음 조선 땅에 출현했을 때와 나중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한백문화재연구원 방유리 선생의 "조선시대 회격묘 출토 유물의 수습과 보존" (야외고고학 제 7호)이나 김우림 선생의 단행본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 이야기" (민속원)을 보면 이 부분이 비교적 자세하다. 김우림 선생 주장에 따르면 조선전기에는 "국조오례의"에 기술된 방식대로 회곽묘를 만들었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소위 "국조오례의" 방식의 회곽묘 제작 기법. 방유리 선생의 논문에서 전재하였다. 초기 방식의 회곽묘 제작 방식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묘광을 파고 그 위에 목곽-.. 2019. 6. 7.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8)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불교식 상장례를 타파하고 주자가 정리한 주자가례를 조선의 공식적인 매장 방식으로 채택했다고는 하지만 조선 바닥 그 누구도 회곽묘를 실제로 만드는 방법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했다. 회곽묘에 사용한 재료. 위에 보이는 재료 중에 석회·모래·황토를 삼물三物이라 부르는데 이것으로 섞어 관 주위에 다져두면 굳어 회곽이 된다. 마사토는 무덤 주변의 생토층을 상징한다. 회곽묘는 지배계층의 대 불교 "사상투쟁" 과정 중에 채택된 묘제이므로 회곽묘는 조선 계급사회의 가장 높은 지위의 사람부터 아래로 그 유행이 흘러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 회곽묘는 "국조오례의"의 흉례 "치장" 편에도 기술되어 있을 정도였으니까 국초에 이미.. 2019. 6. 4.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7)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앞서 우리는 중국에서는 곤충, 나무뿌리나 도굴꾼 침범을 막고자 주자朱子가 실용적인 목적으로 채택한 요장묘가 주자가례朱子家禮 형태로 한반도에 수입될 때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살펴 보았다. 그리고 불교의식으로 점철한 고려시대 제반 장송葬送松 의례를 개혁하고자 하는 조선시대 신진사대부들이 일련의 개혁 일환으로 고려시대에 유행한 석실石室 대신 주자가례에 기록된 대로 회곽묘를 도입하고자 한 것도 앞에서 이야기했다. 이제는 이렇게 도입한 회곽묘가 실제 조선 역사에서 어떻게 변천하고 발전하였는지를 살펴야겠다. 조선시대 회곽묘의 발굴상황 앞에서 이야기했 듯 조선 회곽묘는 그 원류라 할 중국에서 기술적인 도입한 것이 아니라, 주자가례가 기술한 내용을 지남指南으로 삼아 그.. 2019.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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