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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대장경2

고려거란전쟁과 초조대장경 대장경 목판은 어마어마한 문화재다. 필자 생각으로는 이건 한국 같은 크기의 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볼륨의 문화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금속활자만 해도 적은 카피수를 다양하게 찍고 싶다는 욕망이 보이지 않는가. 한국적인 인쇄 전통이라 할 것이다. 금속활자는. 반면에 고려시대 대장경 사업은 그 무지막지한 분량. 게다가. 초조대장경은 조판이 1011-1877까지 만들었다는 설이 옳다면 993-1018년의 고려거란전쟁의 후반기와도 겹치는 것이니, 전쟁하랴 대장경 만들랴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대장경을 두 번을 만들고 그 사이에 의천의 교장까지 있었으니 이 당시의 고려는 싸우고 남는 시간에 목판을 죽도록 팠던 셈이겠다. 참고로 지금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은, 1236-1251년에 조판한 것으로 1231-125.. 2024. 1. 26.
조선왕조 실록을 두번 목판에 새긴 고려왕조 고려시대의 대장경을 추정하건데: 팔만대장경의 글자수와 조선왕조실록의 글자수가 5200만자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 팔만대장경은 쉽게 말해서 조선왕조실록 전체를 목판에 새겼다고 보면 되겠다. 이게 얼마나 많은 글자수냐 하면 중국의 사기부터 명사까지 24사를 모두 합한 글자수가 5000만자가 안 된다. 그런데 팔만대장경이 끝이 아니고 그 앞에 초조대장경이 또 있다. 고려시대에는 조선왕조 전체를 두 번 목판에 새기거나 중국 24사를 두 번 목판에 새겼다고 보면 되겠다. 이쯤되면 초조대장경-팔만대장경이 얼마나 거대한 문화적 성취물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고려시대 초기까지 축적한 한반도의 문화적 역량의 수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고자 할 때, 앞에서도 여러번 ..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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