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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문화연구원2

뒷방으로 밀려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정희 회심작 중 하나인 성남 운중동 한국학중양연구원이다. 출범 당시 이름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거 개장하고 얼마 뒤 박정희는 탕탕탕에 갔다. 박정희 유산이라 해서 적지 않은 질타를 받은 곳이기도 하며 실제 그것이 타당한 면이 많다. 한국정신문화 탐구를 내걸었지만 정신교육하는 감옥과도 같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국책연구원이 이룩한 무수한 성과가 있으니 구비문학대계와 민족문화백과사전 편찬과 같은 일은 불후하다. 나름 한국적 풍토를 살린다며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건축물을 만들었다. 주변 풍광은 천지개벽이라 내가 이곳을 출입처란 이름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한 1998년 말만 해도 그야말로 운중동雲中洞, 구름 속 동네, 선경 같아, 비가 오는 때나 비온 직후 연무에 쌓인 이 동네는 귀곡산장을 방불했다. (2.. 2023. 3. 17.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반평생 바친 김창겸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덕분에 한국 학술문화 비약적 성장"송고시간 | 2019-06-28 06:10한중연 36년 생활 마무리하는 '사전 산증인' 김창겸 부단장"열띤 토론으로 표제어 정해…콘텐츠 보강이 장기 과제" 가찹게는 김천고등학교 선배인 형을 나는 언제나 애늙은이라 부른다. 나는 그를 대략 20년전쯤, 내가 문화재 학술을 전담하기 시작할 무렵에 조우했다. 남들이야 같은 김천이라 하면 이웃집처럼 다 안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도 펴 봐라, 김천이 얼마나 넓은지. 직지사 사하촌 출신 형을 거창 무풍으로 넘어가는 대덕산 아래 동네 사람인 내가 알 턱이 있겠는가? 그 당시에도 백과사전 편찬업무에 종사하던 형은 같은 김천 출신이라는 인연이 빌미가 되었겠지만, 관계가 돈독해져 나중에는 2003년 무렵인가에는 신라.. 2019.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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