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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1996년 애틀랜타의 이건희

by 한량 taeshik.kim 2020. 10. 25.

요새 같은 세상에서는 긴 투병 끝에 오늘 타계한 이건희 같은 경제거물보다 방탄소년단 같은 대중스타 알현이 더 힘들다. 내가 죽기 전까지 방탄이를 먼발치라도 볼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에 비하면 이건희 회장이야 몇 번을 보고 이런저런 질문도 던져보고 답변도 들어봤으니, 훨씬 신비성이 덜하다 하겠다. 

 

이 이야기도 두어번 한 적 있지만, 한국을 떠나 세계무대에서도 거물이요, 그렇다고 언론에 자발로 등장하는 사람도 아닌 이건희를 내가 어찌 대면하겠는가? 나한테 비극은 나는 그를 알아도 그는 나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유명인이란 이런 거다. 내가 그를 아는데 그가 나를 모르는 사람이 절대적 다수일 때 이를 유명인이라 우리는 이름한다. 

 

 

애틀랜타올림픽 개막식 

 

 

1996년 여름은 미국 애틀랜타에서 하계올림픽대회가 열렸다. 당시 체육부 소속이던 나는 선발로 징발되어 한달간 애틀랜타에 머물렀으니, 그에서 관심사안 중 하나가 이건희 씨의 세계올림픽위원회 IOC 위원 선임 여부였다. 당시 한국은 불세출의 스포츠행정 스타가 있었으니, 김운용 씨였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스포츠무대에서도 거물로 통한 김운용 씨는 IOC 부위원장이자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이기도 했으며, 당시 IOC 위원장 사마란치의 오른팔 정도로 일컬었다고 기억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강대할 수밖에.  

 

대회기간 중인 현지시각 17일 오후, 한국시각 18일 새벽, 애틀랜타 매리어트 마르키스호텔이라는 데서 IOC 임시집행위원회와 총회가 열렸으니, 이에서 이 회장이 만장일치로 IOC 위원으로 선임된 것이다. 기억에 이 회장은 사마란치 위원장 추천 몫 12명에 포함되었다. 

 

대회기간 내내 나는 이건희 전담마크맨이었으니, 이유는 그가 당시 대한레슬링협회장이었고, 내가 레슬링 담당이었던 까닭이다. 뭐 레슬링을 2년반 담당하기는 했지만, 그런 자리에 이 회장이 고개나 내밀겠는가? 언제나 그를 대리한 삼성 쪽에서 부회장 자리를 맡아 위임통치를 했다. 

 

 

 

애틀랜타올림픽에 참가한 이건희 

 

 

당시 문제는 그의 종적을 어떻게 잡느냐는 것이었으니, 그가 뭐 언론에 나서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마당에 대체 어디에서 어케 찾아내며, 찾아낸다 한들 접근도 불가능할 텐데 난감한 이야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까닭에 그가 이번에 ioc 위원이 되느냐 마느냐는 오직 김운용 위원장 입을 통하는 수밖에 없었으니, 그렇다고 그 역시도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 접촉이 쉽지 아니했다. 

 

그런 가운데서 마침내 그의 위원 선임이 공식화했으니, 이때 마침내 이 회장이 마침내 대회장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선임되어서 그런지, 그때는 나를 포함한 기자들이 개떼처럼 달라붙어 쫄래쫄래 이것저것 물으니깐 그 특유의 단답형 대답도 했고, 무엇보다 경비원들이 제지를 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때 줏어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 아래 기사다. 덧붙이자면 이 회장은 건강 문제도 있고 해서, 그때도 특히 언변이 썩 논리적이었다고는 하기 힘들거니와, 그런 까닭에 그 맥락을 짐작해 멘트는 다듬어야 했다고 기억한다. 

 

 

1996.07.18 07:53:00
<올림픽인터뷰> 李健熙 신임 IOC위원


(애틀랜타=聯合) 올림픽특별취재단 =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이 되겠다는 어릴적 꿈이 현실로 나타난것이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17일 오후 (한국시간 18일) 국제스포츠 무대의  귀족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선임된 李健熙 대한레슬링협회장겸 삼성그룹회장은 IOC 위원이 된  첫소감을 말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사실이 잘 믿기지않는듯 이렇게 말했다.

 

전날 샌프런시스코에 있다가 애틀랜타로 날아 온 李위원은 IOC총회에서  새로운 IOC위원으로 그를 선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신분증(ID카드)을 발급받기 위해  본부호텔인 매리어트 마르키스호텔에 들렀다가 기다리고 있던 보도진과 즉석 인터뷰를  했다.

 

 

 

 

 

얼떨떨한 기분을 다소 가라앉힌 李健熙 신임 IOC위원은 "내가 IOC 위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력이 그만큼 성장했고 金泳三 대통령 이하 전국민의 전폭적인 성원에 힘입은 것"이라고 인사말을 하고 현재 자신이 맡고있는 레슬링은 물론 한국스포츠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남북한이 함께 IOC위원 자리를 얻게 된 것이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을 스포츠 교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다는 李위원은 "서울사대부고 재학시절 레슬링을 했다"면서 "IOC는 어릴적부터 나의 꿈이었다"고 감격해했다.

 

李 회장은 마지막으로 "IOC 위원이 가능할것이라는 생각은 어제(16일) 회사 정보 보고를 보고 했었다"고 덧붙였다.(끝)

 

 

 

애틀랜타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심권호 

 

 

 

이후 내가 그를 마주할 일은 없었다. 

 

이 무렵 김운용 위원장 반응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하도 기자들이 이건희는 어케 되느냐 자꾸 물어대니, 김운용을 성을 내기도 했으니, 그런 면모가 아래 내 기사에서도 엿보인다.(기사 작성자는 보이지 않으나 내가 썼다.)  

 

1996.07.18 06:39:00
<올림픽낙수>김운용 부위원장,이회장 선임 강력 시사

 

(애틀랜타=聯合) 올림픽특별취재단= 0...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은 17일 오후 1시(한국시간 18일 새벽2시) IOC 임시집행위원회에 들어가기 앞서 대한레슬링협회장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IOC위원에 선임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

 

김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쯤 매리어트 마르키스호텔에서 IOC 총회에 들어가기 전만해도 "이건희 회장이 IOC 위원에 선임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IOC가 한국언론처럼 맨날 이건희씨 얘기만 하는 줄 아느냐. IOC 위원들 중에서 이건희씨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

 

 

 

 

그러던 김 부위원장이 태도를 바꾼 것은 총회 1시간 정도를 지난 휴식시간.

 

이때 김부위원장은 "한국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비록 공동개최지만 월드컵도 주최하는 마당에 IOC위원을 2명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운을 뗀 뒤 "오후에 있을 임시 집행위에서 내가 이건희 회장을 IOC 위원으로 추천할 것"이라고 언급.


그는 이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확신의 강도를 점점 높였는데 임시총회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각사 기자들을 불러 모아 20여분 동안 이건희 회장이 IOC 위원이 되는 절차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말해 '이건희 IOC위원설'을 기정사실화하기도.

 

 

 

애틀랜타올림픽 개막식

 

 

0...김부위원장은 공석 중인 북한몫의 IOC위원 선출에 대해서는 "북한의  김유순 전위원이 이미 3년전부터 계속 장웅 올림픽위원회 서기장을 IOC 위원 후보로 추전해왔다"면서 "북한 IOC위원 선출 문제도 함께 논의될 것"이라고 언급.

 

그는 "오늘 2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는데 이건희 회장과 장웅 서기장 둘 다 IOC위원이 되거나 둘 다 안되는 경우"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전자가 될 가능성이 더 많다"고 자신감을 피력.

 

김 부위원장은 "이건희 회장만 IOC위원이 되면 북한측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도 이미 사라란치 IOC위원장과 만나 둘 다 IOC위원으로 각각 선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부연.

 

 

 

애틀랜타올림픽 탁구 유남규

 

 

0...이날 총회장에는 이건희 회장과 함께 IOC위원에 선출된 장웅 서기장이 총회가 시작된 후 1시간가량 지난 오전 10시쯤 나타나 총회장으로 황급히 사라져 이를 두고 한국 기자들 사이에서는 해석이 분분.

 

그러나 기자들의 대체적인 결론은 아마 장웅 서기장도 뭔가 감을 잡았을 것이라는 것.

 

장웅 서기장은 박성범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체육인 4~5명과 함께 총회장에 모습을 나타냈는데 때마침 그곳에 있던 박상하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조우.

 

박 부회장이 "장웅 선생, 오랜만입니다"라고 반갑게 악수를 청하자 장서기장은  "어, 오랜만입니다. 지금은 좀 바빠서 나중에 얘기합시다"고 응답.

 

이어 장 서기장은 박성범 부위원장이 박 부회장과 명함을 교환하고 통성명을 하자 "뭐하고 있어요. 빨리 갑시다"라고 박 부위원장의 소매를 잡고 황급히 총회장으로 사라졌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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