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민지시대 대학생 수는 고등학생 수와 1대 1로 대응했다.
쉽게 말해 일본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국공립대 어딘가는 갈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도 인기과는 있기 때문에 경쟁에 밀려 원하는 곳을 못 가는 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정원은 대학생수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일본의 구제 교육제도에서 고등학생이란 경쟁에서 자유로운 학창시절의 상징처럼 되어 있었다.
따라서 고등학교가 몇 개나 있는가를 알면,
할당된 대학생 숫자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구제고등학교舊制高等學校가 몇 개가 있었는가.
한 번 알아보자.
먼저 구제고등학교 정점에는 제1고등학교에서 제8고등학교까지 8개교가 있다.
이를 "넘버 스쿨"이라 불렀다. 고등학교 이름 앞에 번호를 붙여 불렀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는 번호가 아니라 각 지명이 붙어 있는 고등학교가 17개 학교,
아예 중학교 5년과 고등학교 2년을 붙여서 만든 7년제 고등학교가 10개 학교,
그리고 대학에 부설된 예과 과정이 6개 학교가 있었다.
이렇게 하면 당시 일본에는 총 41개 고등학교가 있었다.
이 중에 대학 예과 3개교는 각각 조선 (경성제대), 대만 (대북제대), 여순 (여순공대)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 영토에 설치된 고등학교는 총 38개교였다.
반면 조선 땅에는 딱 하나의 고등학교 (경성제대 예과)만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숫자가 절대 부족이었다 할 수 있다.
고등학생 숫자가 결국 대학생수를 결정한다고 보면,
조선인에게 할당된 대학생 숫자가 그만큼 적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흔히 식민지 조선에는 대학숫자가 적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이 고등학교라는 것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고등학교가 조선땅에 전혀 없었다는 것은
조선인 대학생의 숫자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겠다는
일본의 의지이기도 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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