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495

일제시대 식민지 구조 연구의 고도화를 제안하며 앞서 쓴 것처럼 필자는 일제시대 식민지 조선의 시스템 자체가 조선인들에게 매우 불리한 제도로서 당시 조선인들은 그 시스템에서 활동하는 한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 하층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필자가 여러 회에 걸쳐 연재한 교육제도다. 일제시대 교육제도처럼 그 당시 조선인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 당시의 교육제도는 조선인의 경제적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1930년대 이후 이미 일본은 교육수준이 생활수준과 밀접히 결부되는 시대로 들어가 배우지 못한 조선인은 신분 상승의 기회가 사실상 막혀 있었다는 말이다. 이 당시 조선의 소학교가 몇 개라는 식의 통계로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주장도 보는데 필자의 글을 꼼꼼히 봐 오신 분들이라면 왜 이.. 2023. 8. 10.
식민지 조선: 교육시스템의 확립 식민지 조선의 교육 시스템은 "무관심과 방기, 비우호적인 제도"로 정의할 수 있다. 조선인에 대한 교육시스템이 조선인의 교육 수준을 끌어올려 이를 바탕으로 근대화의 엔진으로 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설계였다는 뜻이다. 식민지 조선의 교육시스템이 성립됨에 있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앞에 썼지만 1920년대 중반 이후 조선의 교육제도가 고등교육 졸업자를 배출하는 데서 극히 불리한 시스템이었다는 말이다. 교육제도의 단계를 밟아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대졸자가 양산되는 일본 본토와 달리 조선은 한 단계를 졸업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시스템이었다. 이는 조선인이 교육비를 부담할 재정적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제도 자체가 조선인에게 비우호적으로서 돈이 있더라도 상급학.. 2023. 8. 10.
놀고대학생이 놀자고 부른 노래 놀고 대학생이 놀자고 부른 노래이니 잘못 없다. https://youtu.be/Apqidw-Nfb4 2023. 8. 9.
놀고대학생을 다시 기린다 놀고 (혹은 먹고) 대학생은 이전에도 한 번 이야기 했지만, 대학 4년 내내 공부는 않고 놀아제끼다 졸업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이 놀고대학생이란 후진국이 선진화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출현할 수 밖에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놀고 대학생"이란 고학력 졸업자가 필요한 개발도상국에서 이를 충족하기 위해 수준 미달의 대학을 대규모로 속성으로 증설하고자 할 때 그 대학안에 자격 미달의 "교수"와 수업 안 듣고 놀아도 졸업하게 되는 "놀고 대학생"이 무더기로 온존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자격미달의 교수와 놀고대학생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메이지시대를 거쳐 19세기 내내 출현했었고 20세기 들어와 30년대쯤 되어야 간신히 일본 본토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진정되었다. "놀고대학생" 현상은 국가.. 2023. 8. 9.
실력없는 사람이 변려문 읽는 법 필자처럼 실력이 없는 사람은 변려문을 읽는 일은 고역이다.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변려문이 특수한 경우 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고 고문이 장려되었기 때문에 별문제 없는데, 통일신라-고려시대 글에는 변려문이 꽤 많은 것으로 안다. 이런 글은 상당히 읽기가 난삽해서, 고려시대 글이 조선시대보다 읽기가 쉽지 않다. 필자의 경우 그렇다는 소리다. 필자가 어거지로라도 변려문 읽는 방법을 써 보면, 변려문이 해석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4자, 6자로 댓구를 극악하게 맞추려 하기 때문에 필요 없는 글자를 넣게 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잘 안 쓰는 글자) 둘째는 각종 일화나 성어를 밑도 끝도 없이 집어 넣어 정확히 해석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이미 검증된 기관에 의해.. 2023. 8. 9.
동문선: 최치원 발해 인식의 양면성 흔히 최치원은 발해를 속말말갈의 후신으로 생각하여 고구려와는 별종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근거는 謝不許北國居上表의 다음 구절이다. 臣謹按渤海之源流也, 句驪未滅之時, 本爲疣贅部落靺羯之屬, 寔繁有徒, 是名栗末小蕃. 甞逐句驪, 內徙其首領乞四羽及大祚榮等, 至武后臨朝之際, 自營州作孼而逃, 輒據荒丘, 始稱振國. 위 구절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최치원은 신당서, 구당서 중 신당서의 입장에 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최치원이 발해를 마냥 고구려와는 다른 말갈로만 보고 있었는가 따져 보면 동문선에는 이와 다른 취지의 최치원 글도 보인다. 동문선 47권: 新羅王與唐江西高大夫湘狀: 昔貞觀中。太宗文皇帝手詔示天下曰。今欲巡幸幽薊。問罪遼碣。盖爲勾麗獷俗。干紀亂常。遂振天誅。肅淸海徼。武功旣建。文德聿修。因許遠人。亦隨.. 2023. 8. 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