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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에비슨의 세브란스 학위기 사진으로만 봐서 확신할 수는 없는데 에비슨 선생이 발행한 세브란스 졸업증서의 경우 영문학위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경술국치 이전 1908년에 발행된 졸업증서에는 의학교 졸업생을 의학박사라 하고 영문으로는 Doctor of Medicine and Surgery라 하였다. 이 상황에서는 한문 영문 모두 일본과 차이가 있고 심지어는 대한제국의 학제와도 비교하면 어떤지 모르겠다. 의학교를 졸업하면 MD를 주는 것은 미국식으로 당시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시행하지 않던 방식이다. 필자 생각으로는 이건 에비슨의 독단에 의한 것 아닌가 하는데 따로 연구가 있으면 좋곘다. 다음으로 국치 이후 1910년대에 발행한 증서를 보면 한문으로는 득업사라 했지만 영문으로는 Bachelor of Medicine으로 .. 2024. 1. 12.
1914년 세브란스의 "의학득업사" 역시 김단장께서 올리신 사진. 여기는 서력이 적혀 있다. 1914년에 발행한 세브란스의 졸업증서. 앞에 1908년에 졸업자에게는 "의학박사"를 수여했는데 이것은 미국식의 MD라고 했다. 여기는 국치 이후인 1914년인데 "의학득업사"를 수여한다고 했다. 일제시대에 "득업사"란 디플롬이다. 학사학위가 아니다. 일제시대에는 대학 졸업생만 "학사"를 줬다. 그래서 같은 의사라도 의전을 나오면 "득업사"를 받았다. 세브란스는 당시 의전으로 간주하여 "득업사"를 주게 한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서, 1910년 이전까지 미국선교사에 의해 미국식 학위를 수여하다가 국치이후 일본식 교육제도에 의해 동 학교 졸업생에게 "득업사"를 주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방 때까지 우리나라에는 "의학사"는 경성제대 의학부 외에.. 2024. 1. 12.
1908년 세브란스의 "의학박사" 위 사진은 김단장께서 포스팅 하신 사진이다. 융희 2년에 김희영이라는 분에게 졸업장을 주었는데, 학위가 의학박사다. 흥미롭다. 여기서 의학박사는 Medical Doctor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PhD가 아니다. 현행 우리나라 학제에서는 "의학사"로 나가는 학위다. 이것을 미국에서는 MD로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의학박사로 번역하지는 않는다. 굳이 번역하자면 MD는 "의사"라는 뜻에 더 가깝다. 물론 이것도 면허시험을 통과해야 의사가 되는 것이지만. 융희 2년이면 1908년으로 을사조약 이후이고 이미 통감정치가 시행되고 있을 때다. 저 의학박사라는 명칭을 당시 대한제국 정부나 통감부와 합의하에 부여한 것인지 모르겠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대학 의학부 졸업자에게 "의학사"를 부여했다. 의전 졸업생에게는 .. 2024. 1. 12.
삼국지와 위략 전술한 내용을 다시 풀어 쓴다. 삼국지의 배송지 주는 출전이 다 다르다. 배송지가 자기 의견을 밝힌 부분도 있다. 그런데-. 삼국지 동이전 특히 한반도 국가들의 경우에는 그 출전이 거의 모두 위략이다. 따라서 삼국지 동이전은 진수의 삼국지와 어환의 위략, 이 두개 사서가 혼재해 있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진수의 삼국지에 배송지가 주를 붙였다기 보다. 두 개의 동시기 사서가 같이 혼재해 있으므로 진수의 원전과 배송지의 주는 적어도 삼국지 동이전의 한국사 기사에서는 그 사료적 가치에 차이를 둘 수 없다는 뜻이다. 삼국지 동이전은 아래. 위략, 이라고 써있는 부분이 바로 배송지가 위략에서 인용해와서 주를 붙인 부분이다. 거의 위략 그대로 따온 것을 알 수 있다. https://zh.wikisource.org/.. 2024. 1. 11.
아는만큼 보이는가 연구자로서 성공하는 첫 발은 자기 눈을 믿는 거다. 그리고 자기 눈으로 본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따르면 되는 거임. 연구자로서 실패하는 첫 발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믿고 따라가서 그 논리를 자신이 본 팩트에 외삽하는 작업이다. 하긴. 우리나라는 주자 때부터 최근의 촘스키까지이른바 외국 대가의 논리를 그렇게 내가 본 사실에 외삽하고자 노력하지는 않았는지 한 번은 반성해 봐야겠다. 자기 눈을 믿는 것이 성공의 첫발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 안다는 게 뭔가가 문제겠지. 2024. 1. 11.
준왕이 기자의 후예라는데 대하여 준왕이 기자의 후예라는 것을 현대 중국인들은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니 위키에서는 위만조선 이전의 고조선을 기자조선이라고 아예 써 놓는다. 그들로서는 역사서 써 놓은 그대로이니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볼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준왕이 기자의 후예라고 믿지 않는다. 이건 일종의 모함이라고 생각한다. 전공자분 중에는 이 시기를 예맥조선이라 한 분도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이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지만 구태여 여기서 논란할 생각은 없다. 사실 준왕이 기자의 후예라고 해 봐야 40여세 손이라 되어 있다. 40여세 손.. 필자가 속한 집안의 시조로부터 필자는 35세 손이다. 40여세 손이면 기자의 후예건 뭐건 믿거나 말거나다. 본인이 기자의 후예를 자처했더라도 그쯤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기자의 후예였을 수도..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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