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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준왕이 기자의 후예라는데 대하여

by 초야잠필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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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왕이 기자의 후예라는 것을 현대 중국인들은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니 위키에서는 위만조선 이전의 고조선을 기자조선이라고 아예 써 놓는다. 

그들로서는 역사서 써 놓은 그대로이니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볼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준왕이 기자의 후예라고 믿지 않는다. 

이건 일종의 모함이라고 생각한다. 

전공자분 중에는 이 시기를 예맥조선이라 한 분도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이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지만 구태여 여기서 논란할 생각은 없다. 

사실 준왕이 기자의 후예라고 해 봐야 40여세 손이라 되어 있다. 

40여세 손.. 

필자가 속한 집안의 시조로부터 필자는 35세 손이다. 

40여세 손이면 기자의 후예건 뭐건 믿거나 말거나다. 

본인이 기자의 후예를 자처했더라도 그쯤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기자의 후예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의 후예였건 아니였건 간에 대세에는 별차이 없었을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하를 잡은 후 스스로를 닛타씨의 후예라 했다. 

닛타씨는 겐지다. 겐지에서 갈려나왔고 

아시카가씨 보다도 겐지 종가에 더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쿠가와의 원래 성인 마쓰다이라는 이 닛타씨에서 창씨해서 갈려 나왔다고 한다. 

역시 믿거나 말거나다. 

다만 혈연적으로 정말 후예건 아니건 

도쿠가와씨가 스스로를 닛타씨와 겐지의 후예라고 여겼던 것 자체는 사실이다. 

준왕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가 정말 후예였건 아니었건 간에 

필자는 그 당시 조선의 왕들은 스스로 기자의 후예라고 여기고 있었을 가능성.... 매우 높다고 본다. 

필자는 삼국지 원문과 배송지 주가 매우 신뢰성 높은 사료라고 본다. 


남북조 전란기의 닛타 요시사다. 믿거나 말거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닛타씨에서 갈려나온 겐지로 막부를 열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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