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陳壽)가 장차 ≪삼국지(三國志)》를 수찬하려고 할
때 정양주(丁梁州)에게 말했다.
“만약 천 곡(斛)의 쌀을 구하여 나에게 빌려준다면, 틀림
없이 존공[尊公: 정이(丁廙)]을 위해 훌륭한 전(傳)을 지어
주겠소.”
하지만 정양주가 쌀을 주지 않아 마침내 그의 전이 없게
되었다.
陳壽將爲《國志》, 謂丁梁州曰: “若可千斛米見借, 當爲尊公爲佳傳.” 丁不與米, 遂以無傳. [《類聚》七十二]
1. 진수(陳壽); 자는 승조(承祚), 사공(司空) 장화(張華)가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효렴(孝廉)에 천거함으로써 좌저작랑(左著作郞)에 임명되었다. 《삼국지》를 수찬했는데, 당시에 '양사(良史)'라는 칭송을 받았다.
2. 정양주(丁梁州): 정이(丁廙)의 아들, 자세한 행적은 미상, 정이는 자가 경례(敬禮)이며, 형 정의(丁儀)와 함께 재학으로 이름났다.
천곡작전千斛作傳이란 말 유래다. 《예문유취艺文类聚》 권 72가 인용한 晋·배계裴启《어림语林》에 보이는 말이다.
이 이야기가 《진서晋书· 진수전陈寿传》에도 보이는데
“或云丁仪、丁廙有盛名于魏,寿谓其子曰:“可觅千斛米见与,当为尊公作佳传。’ 丁不与之,竟不为立传。”
어떤 이가 말했다. 정의 정이는 위나라에서 명성이 있어 진수가 그 아들한테 말하기를 나한테 곡식 천곡을 빌려준다면 응당 당신 아버님을 위한 훌륭한 열전을 지어주겠소 했지만 그 아들이 주지 않자 결국 정의의 열전이 없게 되었다.
라 한 것이 그것이다. 아마도 《어림語林》을 인용한 듯 하다.
이 일화에서 유래한 다른 표현으로 정의미丁仪米、천곡미千斛米、구공미천곡求公米千斛 같은 성어가 생겨났다.
돈 받고 역사를 조작해준단 뜻이다. 이를 두고 실제 진수가 그랬는가는 논쟁이 분분하지만 암튼 그렇지 않다면 진수는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만, 진수가 좋은 역사가로 평가받지는 못한다.
역사가로서 공정성은 기본 소양이나 진수는 이 외에도 줄기차게 공정성 시비에 휘말린다. 촉에 있을 적에 사적인 원한 때문에 부러 제갈량을 부정적으로 썼다는 혐의도 개중 하나다.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같은 말이라도 종회냐 완적이냐에 따라 평이 다른 법 (0) | 2020.10.02 |
---|---|
이여가爾汝歌, 황제와의 야자타임 (0) | 2020.10.02 |
내가 자릴 비운 사이 있었던 일, 군산 선제리유적 검파형동기 (0) | 2020.09.30 |
빡빡이와 장발족 (0) | 2020.09.25 |
부산 초원복국을 찾아서 (0) | 2020.09.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