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른바 부산 초원복국 사건 무대가 되는 그 식당은 지금도 영업 중이다.
우리가 남이가?
김기춘이 주도한 이 모임엔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조리 참석했다.
92년 12월인가 11월에 일어난 이 사건은 당시 대선 정국을 흔든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어차피 대권은 YS로 갈수밖에 없었다.
부산 지인을 만나 어디서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이곳을 추천하는지라 두 말 없이 가자 해서 갔다.
주변 일대 풍광이 모조리 바뀌었지만 대략 이 어간인 것만은 분명한 그곳에 여전히 영업 중이다.
이 사건이 하도 요란했던 만큼 이 식당은 이후 유명세를 타고 번창일로를 걸었다고 기억한다.
내가 기자가 된 시점은 93년 1월 1일이며 또 내가 첫 발령지로 부산지사에 배치된 시기는 그해 6월이라 나는 기자로서 이 사건을 접하지는 않았다.
함에도 이 사건 여진은 계속 중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자들은 김영삼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들은 남이 아니었다.
***
부산 초원복집사건은 1992년 대통령선거를 일주일 앞둔 12월 11일 오전 7시 초원복국이라는 당시 부산 남부경찰서 뒤편 음식점에서 부산 지역 담당 주요 정부 기관장과 관련 단체장이 모여 당시 민주자유당(민자당) 후보이자 부산(실제는 거제) 출신 김영삼 후보 당선을 돕는 한편 김대중 민주당 후보,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를 비방하는 대화를 나눈 일을 말한다.
이 모임은 그 직전 제40대 법무부 장관(1991년 5월 27일 ~ 1992년 10월 8일)을 역임한 부산 출신 김기춘이 주도한 것으로 그 외에 참석자는 아래와 같다.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이 모임은 공교롭게도 정주영이 출마한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이 도청하고는 이런 사실이 언론에 폭로됐다. 우리가 남이가? (김대중 정주영이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죽자 같은 말이 오갔다.
이는 결국 역풍이 불어 압도적인 김영삼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어차피 김영삼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였다.
이렇게 해서 문민정부를 내세운 김영삼 정부가 탄생했으니, 이후 정신없는 개혁 폭풍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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