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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요사遼史》 성종기聖宗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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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년 거란에 의한 고려 침공 

 

 

얼마 전 완독을 시작한《요사遼史》는 지금 본기 중 성종기聖宗紀에 다달았다. 이 친구 보아하니 여러 모로 흥미가 가는데, 다른 무엇보다 고려를 침략할 당시 요 황제가 바로 성종이다. 

그의 본기 첫머리를 보니 그의 어릴 적 이름이 문수노文殊奴라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문수보살의 가피를 받고 태어나거나, 문수보살의 가피를 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요사》 본기를 죽 훑어보니 황실 차원에서 불교 진흥책이 다대했으며, 역대 황제가 모조리 반승飯僧을 빼지 않았다. 고려 왕조에서 반승이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잡는데 그와 밀접하다.

아침 출근하기 전에 성종이 고려 정벌군을 일으키는 장면에서 중단했다. 조심할 것은 성종은 즉위할 때 12살. 1차 고려정벌은 이런 꼬맹이 작품이 아니라 그의 엄마 작품이라는 점이다. 성종이 어렸으므로 엄마가 섭정했다.  엄마가 직접 정국을 주도했는지, 혹은 그의 주변에 포진한 어떤 인사들이 정국을 주도했는지는 모르겠다. 

 

 

전성기 시절 거란의 판도 

 



이참에 《요사》를 통독하면서 느끼는 바가 여러 모다. 고려 정벌군을 일으킬 즈음, 후주後周는 宋으로 교체되었고, 그리고 요와 송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하던 북한北漢은 멸망했다. 그리하여 요와 송은 직접 대면하게 되었거니와, 이 무렵 요 제국의 동쪽 편에서는 여진이 발흥하기 시작하는 흔적이 농후하게 요사에서 관찰한다. 

고려를 정벌하기 직전, 요는 대대적인 동쪽 정벌에 나서 여진을 제압한다. 한데 문제는 그 서쪽 및 남쪽 변경에서 宋이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니, 요는 북쪽을 제외한 삼방을 방비해야 하는 압력에 시달린다.  이런 압박을 요 제국은 버텨내기는 했지만, 결국은 이에서 멸망한다. 

맨 처음 고려정벌 계획은 순연됐다. 요하 일대에 포진하는 늪이 마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요사》에 보인다. 

아! 북방을 다시 가야하나? 엄청 추운데..

 

(2013. 12. 10)

 

***

 

 

요나라 봉황장식 관 

 

 

요遼 성종遼聖宗은 본명이 야율륭서耶律隆緒다. 보녕保寧 3년(971) 12월 27일에 태어나 태평太平 11년(1031) 6월 3일 향년 61세로 죽은 제6대 황제다. 재위기간은 982~1031년으로 49년에 달한다. 불과 12살에 즉위했다.

 

즉위 직후 소성황제昭聖皇帝라 칭해졌으며, 그 이듬해에는 천보황제天輔皇帝로 고쳤다가 무슨 일이 있을 적마다 차츰 더 존호가 덕지덕지 붙어 지덕광효소성천보황제至德廣孝昭聖天輔皇帝라 했다가 홍문선무존도지덕숭인광효총예소성신찬천보황제弘文宣武尊道至德崇仁廣孝聰睿昭聖神贊天輔皇帝가 되고, 그걸로도 만족치 아니해서 나중에는 예문영무준도지덕숭인광효공성치정소성신찬천보황제睿文英武遵道至德崇仁廣孝功成治定昭聖神贊天輔皇帝라고 했다. 이를 본인도 제대로 외지 못했을 것이다. 

 

 

요대 고분 벽화 

 

 

 

죽은 뒤 존호는 문무대효선숙경황제文武大孝宣肅景皇帝다. 문무/대효/선숙/경황제 정도로 끊어읽으면 된다. 


제5대 황제 경종과 예지황후 소씨 아들이다. 요 제국 전성기를 이끈 군주다. 발해 잔국인 정안국을 멸했는가 하면 宋을 쳐서 굴복케 하고는 조공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하서河西 지역 회흘回紇을 정복했다. 993년과 1010년, 그리고 1018년에 각각 고려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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