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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교정 : 삼아三我

by taeshik.kim 2019.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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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저 《화랑세기 또하나의 신라》(김영사, 2002) 72쪽과 76~77쪽에는 그 유명한 신라 신하 박제상朴堤上(김제상金堤上)과 치술鵄述이라는 여인 사이에서 난 딸들에 대한 일을 다루었거니와, 지금 살피니 이 대목이 교정이 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이에서나마 이 대목을 교정한다.

《화랑세기》 13세 용춘공龍春公 전에 이르기를 “(황아皇我는) 눌지왕訥祗王 딸이다. 그 어머니 치술공주鴙述公主는 실성왕實聖王의 딸로서 제상공堤上公한테 시집가서 삼아三我를 낳았다”고 했거니와 그만 ’삼아三我’를 고유명사로 보는 바람에 커다란 착란이 빚어졌다. 

삼국유사 왕력편 신라 실성마립간 조에 보이는 치술. 이에 의하면 "실성왕은 치술의 아버지다"고 했다. 더불어 같은 삼국유사 '나물왕 김제상' 조에서는 김제상(곧 삼국사기의 박제상) 부인이 왜국에 가서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다 죽어 치술신모鵄述神母가 되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김제상 부인 이름이 치술이며, 그는 실성왕 딸로써, 김제상한테 출가했음을 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랑세기》 원문에도 분명히 보이는 ‘三我’는 그 자체가 딸 이름이 아니라, ‘我’라는 글자를 돌림자로 쓴 세 딸을 말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까지는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참고로 이종욱 선생이 번역한 《화랑세기》에도 이리 되었다. 이후 나는 다른 기회를 빌려, 이를 교정하기는 했으니, 의성조문국박물관과 한국고대사탐구회가 펴낸 《의성지역 고분조사 50년과 조문국의 지배세력》(경인문화사, 2013) 수록 졸고가 그것이다. 

다시 계보를 정리하면 실성왕 딸인 치술은 제상에게 시집가서 세 딸을 낳았고, 제상이 왜국에서 죽은 다음에는 눌지왕 첩으로 들어가 그의 씨를 받아 황아를 낳았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의하면 치술은 딸만 넷을 두게 된다. 


상장돈장 치술 관련 족도. 이를 보면 치술은 제상한테서 청아 자아 등의 딸을 두었고, 청아는 순실이라는 남자한테서 등흔과 조리 둘을 낳고, 미해한테서는 백흔을 낳았음을 본다. 그 둘째딸 자아는 미해(미사흔) 한테서 파호를 낳으니, 이 파호가 자비왕비가 되어 후명이라는 딸을 두니, 후명이 이흔이라는 남자한테서 수지와 준실을 낳았다. 수지가 법흥왕과 입종갈문왕 동생인 보현 공주한테서 영실 각간을 낳았음을 본다.


그렇다면 ‘삼아三我’, 곧 我를 돌림자로 쓴 세 딸은 누구이며, 그들의 행적은 어떠한가? 그 정체는 원본 《화랑세기》에는 있었다. 하지만 현존본 결락이 워낙 심하고, 유감스럽게도 이 결락한 부분에 그에 대한 대목이 있었다. 물론 현존본에서도 이들 세 딸 중 일부는 편린을 보인다. 하지만 그 전후 맥락을 보여주는 텍스트가 모조리 탈락되어 버린 까닭에, 이들을 둘러싼 사정을 알 수가 없다. 

다행히 《화랑세기》 필사자 남당 박창화가 남긴 《화랑세기》 관련 족도族圖로 《상장돈장上章敦牂》이라는 글자가 겉표지에 적힌 자료에 치술과 관련한 계보가 있어 우리는 三我의 실체를 푼다. 이에 의하면 둘 사이에 난 我자 돌림 세 딸은 청아靑我와 자아紫我와 홍아紅我다. 모두 색깔로 딸 이름을 지은 점이 이색적이다.

나아가 《상장돈장》에 의하면, 제상과 치술 사이의 두 번째 딸인 자아紫我는 미사흔未斯欣(미해美海)에게서 딸 파호巴胡를 낳으니, 이 파호가 자비왕비가 되어 소지왕炤知王(=비처왕)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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