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공자를 상갓집 개에서, 손자를 처세술가에서 끌어내린 리링李零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1. 1.
반응형

"공자는 집 잃은 개와 같은 신세였다."


이에 의한다면 공자는 똥개다. 자기 집을 잃고서는 먹을 것을 구걸하는 개 말이다. 어째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그 외침과 비슷한 평지풍파를 일으킬 만한 주장이다. 


공자 혹은 그를 뿌리로 삼고자 하는 후손들에게는 경을 칠 만한 주장이지만, 태생한 배경을 달라, 공자가 죽어야 할 곳은 대한민국이었고, 공자가 집을 잃은 곳은 중국대륙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둘은 모두 공자를 신화 혹인 성인의 영역에서 끌어내려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런 점에서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일어난 이 두 주장 사이에는 묘한 변죽이 있다. 



리링 교수



공자를 집 잃은 개에 견준 데는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와 제자, 혹은 제자들간 언행을 정리한 《논어》를 보면, 공자를 '喪家狗(상가구)'로 비유하는 장면이 있다. 그 전후 맥락은 생략하거니와, 전통적인 독법에 의하면 이는 '상갓집 개'다. 상가 자체가 초상난 집이니 '상갓집 개'는 역전 앞과 같은 동의어 반복이긴 하지만, 그런 건 빼버리고 아무튼 상갓집 개는 조문객으로 사람과 음식은 넘쳐나지만 정작 돌보는 이 아무도 없어, 쫄쫄 굶는 처량한 신세다.   


한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청대 고증학 전통을 이은 리링(李零. 이령)이라는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는 이 독법에 대한 전복을 시도했으니, '喪家狗'는 상갓집 개가 아니라, '집을 잃은 개'라는 뜻이라고 본다. 기존 독법과 새로운 독법을 비교하면 기존 독법이 '喪'을 '초상난'으로 보는 데 견주어, 리링은 喪을 영어로 보면 타동사로 보아 to lose로 본 것이니, 리링에 의하면 喪家狗는 곧 家를 喪한 狗인 것이다. 


나 역시 이 喪家狗에 대해서는 기존 독법을 의심하지 아니했지만, 리링의 독법을 대하고 보니 그에 상당히 끌린다. 喪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亾也。从哭从亾。會意。亾亦聲。"로 풀었거니와, '亾'은 '亡'의 옛 글자다. 그렇다면 이 경우 亡은 무엇인가? 


같은 《설문》에서 '亾'을 논하기를 "逃也。从入从。凡亡之屬皆从亡。"이라 했으니, 도망逃亡이라는 뜻으로 간주했음을 본다. 삽십육계 줄행랑이라고 할 때 그 도망말이다. 걸음아 날 살려라고 하면서 열라 토끼는 일 말이다. 


이에서 인신引申해서 사망, 혹은 상실로 이어졌으니, 이 점은 이미 청대 고증학자 단옥재段玉裁가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서 명확히 지적했다. ***((亾) 逃也。逃者、亡也。二篆爲轉注。亡之本義爲逃。今人但謂亡爲死。非也。引申之則謂失爲亡。亦謂死爲亡。孝子不忍死其親。但疑親之出亡耳。故喪篆从哭亡。亦叚爲有無之無。雙聲相借也。从入。會意。謂入於曲隱蔽之處也。武方切。十部。凡亡之屬皆从亡。) 


리링은 '喪家狗'에서 喪이라는 글자를 바로 '失'로 해석한 것이다. 물건이나 기억 등을 잃어버리는 일을 '喪失상실'이라는 말로 쓰곤 하는데, 요즘도 일상에서 흔히 쓴 이 말에서 喪이 지닌 여러 의미 중 하나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에 의한다면 喪家狗는 당연히 집을 상실한 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초상난 집 개가 집을 잃어버린 개로 변모한 것이다. 


한데 리링은 이 말로써 《논어》 혹은 그 절대의 주인공인 공자에 대한 새로운 읽기를 시도한다. 그 새로운 읽기의 표상으로써 喪家狗를 내세운 것이다. 상가집 개와 집을 잃어버린 개는 엄연히 다르다. 


국내에도 지난 2012년 7월에도 번역 소개된 《집 잃은 개(喪家狗)》(글항아리)는 그의 고전 해석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그는 기존 고문헌 해석에서  죽간과 백서, 금석문을 중시한다. 이는 단옥재가 대표하는 청대 고증학을 더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라 할 수 있거니와, 이 철저한 문자 독법에 기초해 통설로 통용하는 고전 읽기에 대한 전복적 혁명을 시도한다. 



리링 교수



그는 《논어》에서 고고한 성인(聖人)으로서의 공자를 보지 않는다. 그는 짙은 고독을 읽어낸다. 


"'논어'를 읽고 난 뒤 나에게 남은 느낌은 두 글자, 즉 고독이다. 공자는 매우 고독했다. (중략) 공자는 성자가 아니라 사람이었을 뿐이며 출신은 비천했지만 고대의 귀족으로서 입신의 표본이 된 사람이었다. (중략) 그는 '옛날의 도'에 대한 열정으로 주공의 정치를 회복해 천하의 백성을 안정시키려고 꿈꾸던 사람이었다." 


요컨대 공자는 성인이 아니고 '논어'는 성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자는 대단히 불안했고 또 정말로 어찌할 도리가 없어 입술이 타고 입이 마르도록 초조했으며 실패와 좌절 속에서 유랑하는 신세가 되어 마치 돌아갈 집이 없는 떠돌이 개와 같았다."

   

신적인 영역으로 추앙된 공자를 우리 곁으로 끌어내린 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격렬한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구호가 일으킨 반발이 그러했듯, 중국에서도 리링의 이런 해석을 두고 격렬한 반대가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같은 베이징대학 교수끼리 치고받는 형국이 빚어졌다. 


나는 리링이라는 사람을 저 책이 번역되기 훨씬 전에 접했다. 당시 아마도 몇몇 동학과 채옹蔡邕의 《독단獨斷》 윤독회를 하고 있을 시점으로 기억하는데, 그 동학 중 한 분이 리링이라는 중국 학자가 있는데, 대단한 연구성과를 자랑한다면서 그의 책 중 어떤 것으로 추천해 주었다. 직후 북경에 간 길에 그곳 중화서점에서 문제의 책을 샀다고 기억하는데, 죽간백서에 대한 연구논문집이었는데, 그 새로운 안목에 내가 거푸 무릎을 치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리링이었기에 가끔 국내에도 초청받아 강연회 같은 데서 모습을 드러내곤 했는데, 근자에는 그의 《손자병법》 해설서 국내 출간에 맞추어 다시금 초대되어 지난달 29일 성균관대에서 특강을 했다. 이 자리에는 그에 뒤이어 장궈강(張國剛) 칭화대 교수가 《자치통감》을 강연했거니와, 나는 두번째 강연 질의 토론자로 초대되어 갔다. 


아쉽게도 리링 교수를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손자병법 해석에도 논어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각종 파격으로 넘쳐난다. 그에 대해서는 우리 공장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중국 사상가 리링 "손자병법은 만병통치약 아냐"

송고시간 | 2019-10-30 16:43

첫 방한서 특강…"철학과 실용 결합은 여전한 난제"


기사 제목에서 그의 의도가 잘 드러나거니와, 요컨대 그는 손자병법이 단순한 병략가서, 혹은 경영처세술로로 읽히는 데 대한 다대한 불만을 표출한다. 그는 손자병법을 병서라는 관점을 뛰어넘어 그가 구현하고자 한 병법은 춘추시대 개혁의 일환이자 국가 경영철학 중 하나였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파격으로 점철하는데, 그만큼 반격 역시 거셀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굳건히 버티며 한편에서는 학계의 새로운 메시아차럼 갈채를 받는다. 베이징대학 교수이기 때문일까? 아닐 것으로 본다. 그의 주장은 단순한 파격을 넘어 혁명이며, 그 혁명은 고전읽기의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 때문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