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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삼국지의 사본寫本 by 김영문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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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수가 삼국지를 완성할 무렵은 이미 종이 사용이 보편화한 시절이나, 아직 목판 판각이 널리 보급된 시절은 아니다.

따라서 진수의 삼국지 첫 텍스트는 죽간, 백서帛書, 판각본版刻本이 아니라 종이에 쓴 필사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와 연관된 몇 가지 유물이 발굴되었다.

* 첫째, 중국 청나라 말기 선통宣統 원년(1909년)에 지금의 신장新疆 산산현鄯善縣의 한 농부가 투위거우吐峪溝라는 곳에서 땅을 파다가 삼국지 오지 위요화핵전韋曜華覈傳이 기록된 종이 잔편殘片을 발견했다.

이 잔편은 모두 25행이 남아 있었고, 당시 신장포정사新疆布政使 왕수난王樹枏에게 보내졌다.

왕수난은 1913년 7월 이 잔편을 중화학보中華學報 제9기 금석金石  코너에 발표하면서 이 잔편이 아마 북위北魏 시대의 유물인 듯하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이후의 학자들은 당나라 사본으로 판단했다.

이후 이 잔편은 일본인 나카무라 후세츠中村不折에게 귀속되었다가 지금은 일본 도쿄東京 타이토구립서도박물관台東區立書道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 둘째, 1914년에서 1915년 무렵 신장포정사 왕수난이 신장 투루판吐魯番에서 얻었다는 잔편으로 여기에는 삼국지 오지 우번육적장온전虞翻陸績張溫傳 80행 1090여 자가 남아 있다.

이 잔편은 1902~1904년 일본 탐험대가 발견했다는 설도 있고, 1924년경에 발견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근래에 샤오위肖瑜는 1914년에서 1915년 무렵 왕수난이 얻었다는 설을 가장 믿을 만하다고 고증했다.

이 잔편은 왕수난의 아들 왕위푸王禹敷에게 귀속되었다가 일본인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이후 1924년 중국인 바이젠白堅이 거금을 들여 일본인에게서 이 잔편을 사들였으나 1930년에 다시 일본인 타케이 료조武居陵藏에게 귀속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샤오위는 언제 출토되었는지 알 수 없는 오지 우번전虞番傳 잔편 10행도 내용과 서체書體에 의거해 볼 때 바로 위의 잔편 일부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잔편도 바이젠, 나카무라 후세츠를 거쳐 지금은 일본 도쿄 타이토구립서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학자들은 이 두 가지 잔편을 모두 진晉나라 사본일 것으로 추정했다.

* 셋째, 1931년 무렵 중국 둔황敦煌 장경동藏經洞 모처에서 삼국지 오지 보즐전步騭傳 잔편이 발견되었다.

이 잔편도 애초에 진晉나라 사본으로 인정되었으며, 당시에 둔황의 명사名士 장젠밍張鑒銘이 얻어서 그의 아들 장쭤신張作信에게 물려줬고, 1955년 장쭤신은 이 잔편을 둔황문물연구원敦煌文物硏究院에 기증했다.

그러나 이 사본에 대해서 지금까지 위조된 잔편으로 논증한 학자들이 많다.

* 넷째, 1965년 중국 신장 투루판 잉사英沙 고성古城 남쪽 쑤궁탑蘇公塔으로부터 1km 떨어진 곳의 불탑 유지遺址 항아리 속에서 삼국지 위지 장홍전藏洪傳 잔편 1쪽과 오지 오주전吳主傳 잔편 1쪽이 출토되었다.

이 잔편도 진晉나라 사본으로 밝혀졌으며, 지금은 신장박물관新疆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 이밖에 일본 나라시奈良市 아카이난메이도赤井南明堂에도 삼국지 촉지 제갈량전諸葛亮傳의 사본 잔편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잔편은 가짜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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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지주 삼국지를 완역하고선 출판을 기다리는 역주자 김영문 선생 글이다.


삼국지의 판본(2) 명대明代 남감본南監本 by 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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