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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1년 전 나는 떠났고 1년 뒤 나는 다시 떠났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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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소스 아폴론 신전에서


2023년 10월 16일 나는 만 31년에서 두 달 보름 모자라는 긴 시간을 보낸 직장 연합뉴스와 그 직분? 직책? 직업? 이라는 기자를 때려치고 나왔다.

정년보다 조금 일찍 뛰쳐나온 이유는

첫째 그 생활에 대한 환멸 때문이며

둘째 그에 더해 마침 회사 또한 미증유 위기라 늙다리를 솎아낼 수밖에 없었으니 그를 기화로 실시한 희망퇴직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떨치기엔 그만큼 컸기 때문이며

셋째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저 중에서 가장 컸던 것이 세 번째다.

그렇다면 지난 일년이 나한테는 어땠는가?

원 없이 놀았고 원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 했다.

나는 체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그것이 잡문이건 뭐건 글쓰는 일을 한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건 혹 나도 모르는 어떤 독자를 위하는 일이건 그 일로 소일하려 한다.

이런 자리 오라는 제의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어울리는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자리는 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일을 이제는 시작하려 한다.

암것도 아닌 일이지만 보람 있다면 그걸로 됐으며 부디 그리 되었으면 한다.

그에 즈음해 훌쩍 다시 떠났으니 거창한 각오? 이딴 거 없다.

딱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떠날 수밖에 없던 그 앙금이 말끔히 사라졌음 한다.

사람은 자기 아픔만 크게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나는 피해자이기만 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로 인해 아팠을 사람 오죽이나 많겠는가?

나는 가해자다.

그러니 억울하다 징징댈 필요없다. 나를 조금만 돌아보면 된다.

그때 새삼스레 내가 체득한 것이 일전에 친구 빌려 말했듯이 딱 두 마디만 제때 하면 된다.

고맙다.
미안하다.

이 두 마디면 족하다.

이 두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해 망친 일이 얼마나 많고 멀어져간 사람 오죽이나 많은가?

저 두 마디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해야 한다.

고맙다는 말은 미안하단 말이며

미안하단 말은 고맙다는 말이다.

지금 낙소스에서 이 글을 쓴다.


***




1년 전 오늘 쓴 글을 전재한다.


[감사합니다]  

두 시간 30분 뒤에는 저 김태식은 연합뉴스 소속이 아닌 자유계약 FA 시장에 풀립니다.

혹 저를 상기할 때는 반드시 voluntary 백수라 해서 볼런테리라는 수식어를 강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새로운 시작에 들어선 마당에 일일이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카톡 등록 연락처만 해도 만 명을 넘어서는 바람에 저로서는 방법이 없어 이런 공지로 퉁 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응원이 있어 무사히 연합뉴스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뵐지는 모르나, 근간에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김태식일 것입니다.

새로운 자리에서 뵙겠습니다.

2023. 10. 16 김태식 드림


***


다시 일년이 더 흘러 자발백수 꼭 2년을 채웠다.

앞에서 에둘러 말한 퇴직 이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제 비교적 확연해졌지만 결국 배운 짓이 도둑질이라고 글쓰기다.

그 글쓰기도 이른바 나이 들어가니 창작성 가미한 그런 일은 날이 갈수록 더 어렵고

그리하여 비록 남의 입을 빌리기는 하지만 내가 그런대로 남한테 가야 할 자리는 뺏지 않으면서도 누군가는 해야 하나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찾아갔으니

구체로 적시하면 세계 고고학 흐름 소개라

이는 신물 나도록 말했듯이 우리네 고고학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절박성도 있다.

한국고고학을 매양 문과대 고고학이라 비판하거니와 과학이 가미되지 아니한 고고학은 고고학이라 부를 수도 없으면

한국고고학이 바로 그 점에서 전근대를 벗어나지 못하고선 여전히 구래의 전통만을 정통이라 고수하다 세계고고학 흐름에서 낙오하고 말았다는 그런 절박성이 나로선 무엇보다 컸으니 이를 끌어엎고 싶었다.

물론 저런 흐름을 어찌 나 한 사람이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내가 얄팍한 사명감 무장해서 이 일을 굳이 하겠다 나선 까닭은 그 흐름을 바꾸는데 그래도 일조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훗날 한국고고학을 정리할 때 이런 내 작은 공로랄까 하는 점은 기억조차 되지 않겠으나 그래도 가만 두었으면 썩어문드러졌을 한국고고학에 그래도 경종은 울렸으며 그랬기에 그런 김태식이 있었기에 그 썩은 고인물에서 한국고고학이 적어도 십년은 일찍 빠져나오게 한 사람으로 남았으면 한다.

누군가 이런 나를 기록해주지 않아도 좋다.

그런 총구를 당긴 사람이었으면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해둔다.

자발 퇴직 2주년을 맞이해 2025년 10월 16일 剡溪 植은 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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