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활용을 논할 때,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계를 배회하는 유령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연구가 제대로 되어야 전시가 성공한다?
이런 믿음이 팽배하다.
유의할 점은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그 연구로 먹고 산다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분명 저의가 있다.
바로 그에서 자신들이 존재하는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이는 곧 그들한테는 밥줄이다.
저 말 믿을 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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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넘게 지켜보면 안다.
새빨간 거짓임을.
연구랑 전시가 성공하느냐는 전연 관계가 없다.
어느 만큼 관계가 없는가?
눈꼽만큼도 관계가 없다.
연구가 철저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삼은 전시 중에 단 하나도 볼 만한 것이 없다.
왜?
이런 전시는 그런 논문 그런 연구성과를 장과 절에 따라 배열한 까닭이다.
그런 전시는 보나마나 서론본론결론 딱 그 연구논문을 따라간다.
전시는 보러 가지 내가 분석력을 키우거나, 서론하고 본론하며 결론을 얻기 위해 가는 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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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리가 한때 팽배한 데가 고고학 발굴보고서였다.
내가 발굴 완료 2년 이내 발굴보고서 강제 간행 규정을 만들기 전엔 저 따위 말이 횡행했다.
연구가 충분해야 보고서가 알차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발굴보고서는 연구보고서가 아니다.
요새는 이를 완충하려 하더라만, 발굴보고서는 그냥 말 그대로 팠더니 어디에서 뭐가 어떤 상태로 나왔다, 이것이 본령이다.
저런 말을 되놔이며 밍기적댄 발굴보고서 치고 제대로 나온 게 하나도 없다.
걸핏하면 30년 40년을 넘겼으니, 그리하여 그 발굴을 담당한 자들이 죽고나면 책임을 물을 데도 없다.
이걸 방지하겠다고 기관 징계라는 카드를 꺼내들기도 했지만 암튼 연구랑 그 전시, 곧 문화재 활용은 전연 관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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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연구에 기반한 전시는 철저하게 논문적이다.
그래서 볼 만한 것이 없고 설혹 있다 해도 그 전시는 개피곤하며 골이 지끈거린다.
물론 살피면 이런저런 구석들을 눈여겨볼 데가 많지만, 내가 박물관 미술관을 그딴 공부를 하러 간단 말인가?
박물관 미술관은 콘서트 장과 같아야 한다.
연구가 철저해야 전시가 성공해?
믿지 마라, 새빨간 거짓말이다.
연구와 전시, 활용은 철저히 다른 영역이다.
***
유럽, 특히 그리스를 배회 중이던 작년 11월 1일, 에게해 로도스 섬에서 쓴 글이다.
지금 발견하고 뒤늦게 발행한다.
다시금 말하지만 철저한 연구에 기반한 전시는 처절하게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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