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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 진가를 발휘하는 분야는 그네들 시대 구분에 의하면 역사시대보다는 선사시대다.
인류가 등장하면서 그 시원을 열어제낀 구석기를 필두로 신석기, 그리고 그 절반은 문자기록이 없는 청동기시대 중반까지가 인류문화사를 구명하는 데 고고학이 독패를 구가한다 하겠다.
저 중에서도 그 기간만 따지면 절대량이 구석기시대다.
내가 세계문화사를 배울 때만 해도 지구에 인류가 출현한 때를 2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 했지만, 지금은 아마 700만년 전까지 올라가기도 하는 것으로 안다.
신석기는 그 시작점과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고 논란이 되기는 하지만, 또 곳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대략 1만년 전에는 들어갔다고 본다.
근동 같은 경우가 좀 빠르다 해도 1만2천년 전을 넘기는 힘들다.
이리 보면 인류역사는 현생 호모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저 수백만 년 중 그 수백만년이 실은 구석기 시대다.
저 절대하는 시간을 독무대로 삼는 학문이 고고학이라, 물론 이 고고학도 여러 학문과 공존하며 새로운 국면을 타개해 나간다.
하지만 우리네 일상에서 구석기는 여전히 멀다. 시간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그 체감 온도도 무척이나 멀어서 구석기가 고고학 본령이라는 말은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고고학은 90%가 역사고고학이다.
왜 고고학 중에서도 유독 구석기가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고, 그래서 더욱 어렵게 보이는가?
이런 말을 하면 구석기학 전공자들은 펄쩍 뛰면서 무슨 소리냐? 구석기야말로 진짜 고고학이다 하는데,
이걸로 생평을 울거먹고 국립중앙박물관장까지 해자신 배기동 선생이 나한테 보인 반응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짜 구석기는 재미 있는가? 재미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런 사람들한테 서슴없이 권하고픈 단행본이 근자 거푸 출간됐으니,
그 스토리텔러는 1년을 사이에 두고 그 첫 권 '단단한 고고학'이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속편으로 선보인 '우리가 처음 사피엔스였을 때'(사계절)를 선보인 김상태 국립나주박물관장이라
이들 두 책을 받아들자마자 내리 읽어내린 나로서는 이런 나 자신에 우선 놀랐으니,
근자 이리도 앉은 자리에서 그냥 죽죽, 그것도 내가 낄낄 웃어가며 재미 있게 읽은 책이 드물기만 한 까닭이었고
다음으로 어리숙숙하게만 보이며, 그래서 천상 이웃 쌀집 사장님처럼 보이는 翁이 물론 말은 조근조근 잘 하는 편이지만, 이리도 글발까지 갖춘 재원이었던가에 새삼 놀랐으니,
그러면서 내심 생각하기를 이는 둘 중 하나리라 했으니,
첫째 옹이 세 치 혀로 세상을 농락한 천상의 야부리꾼이거나, 둘째 편집자를 잘만났겠구나 했으니,
설혹 두 번째라 해도, 옹한테서 비롯하는 원천 콘텐츠가 훌륭하지 않으면 결코 이런 책을 나올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전편도 그렇고 챕터 제목과 그 소챕터 제목들을 참말로 감칠맛나게 뽑았는데, 이를 언론계 속어로는 미다시라 하거니와,
예컨대 인류가 처음에는 육지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훗날 바다로 진출했음을 논하는 대목에서는 '육상인류학에서 바다인류학으로'를 제창하면서 그것을 세분하기를 '결성! 해산물 원정대'라 하는가 하면
그렇게 진출한 바다를 건너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자' 외치더니, 그 세부로 들어가서는 '바람아 불어라!'로 외치고선
이내 구석기 식단으로 들어가서는 그 식단을 재구성하기도 하니,
이런 면면들을 보면서 편집자 잘만난 옹이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부럽기만 하다.
옹의 책을 거푸 출간한 사계절이 역사문화 분야 출판사로는 책을 깔끔히 편집하기로 소문났고,
무엇보다 그 하나하나가 이른바 양서를 내는 명성답게 참말로 깔끔하게 들기름 묻혀 막 소출한 떡가래마냥 산뜻한 책으로 만들어냈으니, 내가 출판사에 고맙다는 말을 대신 전하고 싶다.
전편이 구석기 개설이었다면 이번 속편은 '예술과 기술의 기원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그것을 좀 더 깊이 들어갔다 할 수 있거니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 폭소를 참지 못한 대목이 있으니,
제주박물관 근무시절 그곳 어느 현무암 용천동굴 조사를 무슨 배짱인지 혼자 들어갔다가 손전등 밧데리 앵꼬나서 기겁한 순간이 그것이었다.
지금 나도 웃고, 김옹도 웃겠지만, 저 깊은 동굴 깊숙히 혼자 들어가 무엇보다 전등도 없는 가운데 칠흑 같은 동굴에 갇힌 기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진짜 죽다 살아난 모양인데, 그래도 내가 폭소한 까닭은 김옹 표정이 안 봐도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저 선하게, 더 솔직히는 이웃 쌀집 아저씨 같은 저 김옹 표정이 어땠을까 오락가락 하는데 그 표정들이 짤 영상처럼 오간다.
내가 놀란 지점은 실은 이곳이다.
구석기학에서는 아마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닐 터인데, 왜 구석기인들은 온통 칠흑만이 지배하는 그런 동굴 깊숙한 곳에다가 그림을 그렸을까?
우리는 아직 이런 구석기시대 동굴 그림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유럽 지역 유명하다는 구석기 동굴은 죄다 저렇고,
근자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저들보다 더 오래된 동굴그림이 발견됐다 해서 환호로 아우성이다.
자칫 그 입구도 찾지 못한 채 오도가도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극단하는 공포에서도 옹은 구석기를 이야기한다.
왜 이런 동굴에다 구석기인들은 그림을 남겼을까?
그러면서 묻는다.
도대체 이런 칠흑을 구석기인들은 어떻게 돌파했을까? 등잔이나 관솔불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길을 찾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지금처럼 전등 환하게 켜고선 온 동굴을 밝게 비출 시대도 아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런 심연으로 이끈 도구, 바로 구석기 등잔을 찾아간다.
횃불도 있었다는 증거도 일부에서는 포착된 모양이라, 실제 구석기 등잔은 심심찮게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으로 왜 이런 데다가 저리 장대한 그림들을?
더구나 그 그림들을 지금 우리가 그런 것처럼 저들이 전체를 감상할 수도 없었다.
횃불 켜 봐야 일부 구간만 들어올 뿐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전체로 감상하는 동굴 벽화를 그 그림을 그린 그네들도 정작 제대로 전편을 감상할 수는 없었다는 뜻이다.
구석기학도 김상태를 진짜 구석기학도로 만든 순간이 저 용천동굴 오도가도 사건이었다 하겠다.
그는 심연에 갇혔지만, 그 심연에서 한층 깨어있는 구석기학도로 생환한 것이다.
이런 일화들까지 슥삭슥삭 양념쳐서 곁들이며 옹은 구석기 문화를 이야기한다.
한데 그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다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쉽다!
어디 하나 내가 이해 안 가는 구석이 없다. 너무나 쉽다.
그래서 이 책과 전편을 읽고 나면 나도 구석기학 전문가가 된 것 같다.
전편과 이번 책이 주는 최대의 미덕은 이것이다. 김상태처럼 하면 누구나 구석기학도다!
이 자신감을 심어준다.
그만큼 '단단한'과 이번 '우리가'는 고고학이 이만치 재미있는 학문임을 만천하에 폭로한다.
그러면서 그렇지 아니한 고고학도들을 향한 짙은 배신감도 표출할 수밖에 없으니, 다른 고고학도들한테도 고하거니와 쓴 너도 알지 못할 그런 난수표 남발하며 그것을 고고학이라 할 생각 말고 이렇게 쓰라 주문한다.
옹이 젊은 시절 나이트 죽돌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책은 밤을 열어제끼며 문을 열거니와,
그 밤을 이기고자 한 인간의 쟁투를 시작으로, 예술의 영역을 발견하고자 한 욕망을 안료 이야기로 풀어보고, 그에서 예술이라는 영역을 개척해간 인간의 족적을 추적한다.
뼈를 도구로 발견하는 데서 음악의 시원을 탐구하며 바늘의 발명이 지닌 중요성을 간취하는가 하면 앞서 잠깐 말한 바다로 진출한 인간을 찾아나선다.
전편도 그렇고, 이번 편도 그렇거니와 옹은 적절한 간을 쳐서 세 치 혀로 독자를 우롱한다.
무엇보다 세계 구석기학 흐름이 한 눈에 보이는데, 공무로 바빠야 할 옹이 도대체 이번 책에 동원한 그 최신하는 고고학 흐름들은 무엇으로써 긁어모으고 정리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이번 책 하나로 세계 구석기학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가 낭자한 선혈처럼 선명하기만 하다.
구석기가 본래 그렇다.
1만년 2만 년은 수시로 왔다갔다 하고, 들을 때는 참 그럴 듯하지만, 옹도 고백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그렇다고 확실할 수 있는 것은 실은 아무것도 없다.
그게 구석기학이다.
적어도 만년 이상이나 흐른 지금의 우리가 그 시대가 어찌 이렇다 저렇다 단정할 수 있겠는가?
그 시대로의 여행은 기나긴 탐험이 될 것이며, 옹은 다시 그 긴 터널을 다시 들어갈 것이다.
이번엔 좀 더 보조밧데리 충분히 채우고 갔으면 싶다.
그래야 또 다른 후속편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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