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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어숙권 스핀오프] 시간, 순환에서 한 줄로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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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인용한 어숙권 패관잡기 한 일화에는 

가정 을사년에 복건福建에서 표류漂流한 사람들이 호남 흥양興陽에 정박했는데, 현감縣監 소련蘇連과 녹도 첨사鹿島僉使 장명우張明遇 등이 왜적倭賊이라고 여겨서 전후 300여 명을 베어 죽였다.  

는 논급이 보인다. 

이런 대목을 만날 때마다 독자들은 돌아버리는데,

저 일이 발생한 시점을 어숙권은 "가정 을사년"이라 하지만 이것이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 대뜸 들어오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저 가정 을사년을 저를 번역한 사람들이 친절하게 언제라고 구체로 서기로 환산해 주는가?

안 한다.

물론 요새는 저걸 해주는 역주자도 많지만, 조금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불친절하기 짝이 없어 그냥 저리 퉁치고 넘어간다. 

그렇다면 저 시점이 구체로 언제인가?

결국 목마른 놈이 우물 파기 마련이라, 내가 찾아내야 한다.

가정이란 嘉靖이라, 명나라 세종世宗 가정제嘉靖帝 시대에 사용한 명나라 연호다.

대략 45년을 썼다. 서기로 환산하면 1522년 이래 1566년까지다. 

가정 을사년은 저 기간에 해당하는 간지 을사년을 찾아야 한다.

어찌 찾는가? 연표집을 봐야 한다.

이런 연표집으로 최근에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한 눈에 검색하는 시스템을 서비스하는 것으로 알지만 이것도 귀찮아서 또 나는 아직 꼰대라 대개 시중에 선보인 연표집에서 찾아 본다. 

이 연표를 보면 가정 연간 을사년은 1545년이라, 조선왕조로서는 그해 7월 인종仁宗이 사망하고, 명종明宗이 들어섰다. 

인종은 참말로 불쌍해서 그 전해 11월인가 중종 뒤를 이어 즉위했지만 금방 훅 갔다. 

따라서 어숙권이 말한 가정 을사년은 1545년이며, 조선 왕조로서는 인종 즉위 1년이다.

그 뒤를 이은 임금 명종은 이듬해부터 자기 재위 연수를 친다.

다시 말해 1545년 중 상반기는 인종 시대, 그 하반기는 명종 시대지만, 이 시간을 나눌 수는 없어 이해 전체는 몽땅 인종한테 갖다 바친다. 

이를 즉위년 유년법踰年法이라 한다. 

새로 즉위한 왕 시점을 언제로 기점을 잡느냐 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그냥 흘린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왜? 

시간에 관계하는 까닭이다. 

인간사 시간 만큼 중요한 것은 오직 공간이 있을 뿐이다. 

다시 저 을사년으로 돌아가서, 옛날 노땅 한학자들은 지들이 잘난 체 한다 해서 저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해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실은 더 정확히 말하면 게을러서다. 게을러서 안했을 뿐이다. 

다음으로 게으름과 함께 저들과 지금의 우리가 시간 관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들은 가정 연간이라 하면 아 대강 어드메쯤 하고 지나가지만 우리는 서기로 환산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환산을 해서 한 줄로 세워야 한다. 

전통시대 서기 도입 이전 시간과 서기 도입 이후 시간은 왕청나게 다르다. 

전통시대 시간은 순환성을 굉장히 강했지만, 지금의 우리는 곧 죽어도 시간을 일렬로 죽죽 세워야 직성이 풀린다.

서기?

이 달력의 변화를 여전히 무심하게 넘기는 자가 많은데 천만에!

단군 조선 이래 시간을 한 줄로 죽죽 세워 2025년에 이르는 현 시점까지를 오직 한 줄로 배열하는 이 시간 관념이야말로 혁명 아닌가? 

역사학은 이런 걸 물어야 하고 이런 걸 답해야 한다.

시시껄렁한 잡문들 쓰고선 이게 연구?

그러니 판판이 외국애들한테 그것도 연구냐 놀림이나 당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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