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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숙권이 패관잡기稗官雜記라 해서 필기류 만담집을 하나 쓰는데, 제목을 풀어보면 패관이 정리한 잡다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패稗는 곡물이라 하지만 곡식 사료에나 쓰는 암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 피죽도 못 먹은 얼굴이라 할 때 그 피이며, 흔히 나락 혹은 벼를 겨냥해 잡물을 의미한다.
패관을 일러 흔히 말하기를 임금이 민간의 풍속이나 정사政事를 알기 위하여 세상의 풍설과 소문을 모아 기록시키던 벼슬아치 라고 하나, 흔히 벼슬아치가 자신을 겸칭할 때도 쓴다.
저 패를 응용한 대표 만담집이 고려 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찬술한 역옹패설櫟翁稗說이라,
패설이란 말 자체가 그리 신뢰성을 주지 못할 이런저런 잡스런 이야기지만 그런 대로 읽으면 재미 있는 이야기라는 뜻도 함유한다.
어숙권이 비록 공무원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 자신 서출로 내세울 만한 피가 없으니, 그런 그가 하급직, 전문기술직 전전하며 그래도 보고 듣고 종합한 이야기라 해서 패관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현재 전 6권이 남았지만, 단독으로 전하지는 않고 대동야승大東野乘이니 해동야언海東野言이니 하는 필기류 전집 중 한 파트로 남았을 뿐이다.
물론 요새야 뚝 떼어내 별도로 출간한다.
이 패관잡기는 수필류 혹은 필기류 중에서는 무척이나 독특한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직업과 밀접하다.
앞서 정리했듯이 그는 서출로 중국어 전문가였고, 그래서 사신단을 수행해 중국을 왔다갔다 했으며, 중국어 전문 교재를 편찬하는 일에 종사했다.
그래서 저 패관잡기에는 그 이전 혹은 그 이후에 무수하게 선보이는 필기류의 그것들과는 달리 저런 직업에 종사하지 않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이야기로 그득그득하다.
특히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중하위급 인물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일화가 많고, 무엇보다 중국과의 교유에 대한 논급이 적지 않다.
개중 하나가 그 제1권이 수록한 다음 일화라
동지同知 김세한金世澣이 일찍이 군관軍官으로 연경燕京에 가서 중국 말을 흉내내어 쓰는데 성운聲韻은 비록 같지 않으나 늘 쓰는 말 중에서 그래도 열 가운데 한둘은 통하였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곧 중국 말로 이야기하곤 하여 사람들이 많이 웃었다.
가정 을사년에 복건福建에서 표류漂流한 사람들이 호남 흥양興陽에 정박했는데, 현감縣監 소련蘇連과 녹도 첨사鹿島僉使 장명우張明遇 등이 왜적倭賊이라고 여겨서 전후 300여 명을 베어 죽였다.
또 한 배가 바다 섬에 머물렀는데, 그때에 김세한이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로 있으면서 군대를 거느리고 달려가 보니, 그 옷차림이 당 나라 제도와 비슷하므로 중국 말로 물어보니 바로 복건의 백성들이었다.
드디어 서울로 압송하였는데 모두 200명이라 나중에 모두 요동으로 돌려 보냈다.
소련과 장명우를 극형에 처하려 하였으나 마침 사면을 받았다. 중국말이 200명 목숨을 살려내었으니, 이 어찌 우스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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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모르는 너무나 우뚝한 셀렙 어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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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모르는 너무나 우뚝한 셀렙 어숙권
조선 중기를 살다간 셀렙이지만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유명인사가 있다. 각종 증언이 풍부하게 남았고, 더구나 엄청시리 유명한 저술도 남겼으며, 이리저리 인구에 회자한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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