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민지시대가 개막하면서 창경궁은 창경원이 되어 일반에 개방하고 동물원 식물원으로 변모했다.
이를 격하 혹은 민족정신 말살이라는 압도하는 시각으로 보지만, 글타고 그 절대 존재 기반인 왕정이 타도된 마당에 그걸 뭘로 쓴단 말인가?
식물원이건 동물원이건 나발이건 새 시대로 변화는 불가피했으니,
나아가 그 흐름과 궤를 같이해서 비로소 궁궐에도 조경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볼품 없었으면 새 주인이 된 일본 사람들이 거기다가 사쿠라를 잔뜩 심었겠는가?
자연과의 조화?
살다 보면,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보다 허망한 말 없다.
자연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자연주의를 채택했다면 그런 땅에다가 아예 궁궐이건 나발이건 그 어떤 위해도 가하는 개발 공사는 해서는 안 된다.
자연과의 조화?
그 자연 뜯어보면 모조리 인공에 지나지 않으니, 나무 하나하나 풀떼기 하나하나까지 사람 손길 거치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
왜?
가만 두면 묵정밭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끈임없이 조작했으며, 그 조작이 식민지시대가 개막하고 한국사회가 이제는 경험하지 못한 근대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급속도로 변모를 맞이하게 되니, 그 과정에서 사쿠라가 선택되었을 뿐이다.
이 사쿠라, 참말로 봄철마다 장관이었다.
민족정기건 나발이건 뭐건 참말로 장관이라, 그것이 만발하는 봄날이면 창경궁 아니 창경원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왜 사쿠라를 안 심었는가?
몰라서다. 무식해서다.
사쿠라가 없기야 하겠느냐마는, 또 야산에 자생하는 사쿠라가 적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조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조경이라 해 봐야 맨날 하는 그 타령,
곧 소나무 몇 그루 노송 심어다 놓고, 매화 나무 몇 그루 심어다 놓고선 한다는 말이 낙랑장송이요 기개요 절개요 하는 그 헛소리 타령밖에 더 있었겠는가?
몰라서 못 심었고 몰라서 안 심었을 뿐이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조선왕조가 지금도 계속된다면 종묘제례악에 피아노 바이올린 썼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전통?
웃기는 소리 그만해라.
이 전통이 하나로 고정해 묵수된 시점이 문화재보호법 제정 시행이라는 역설을 우리는 이제 심각히 따져 봐야 한다.
성립할 수도 없는 원형이라는 괴물을 주입하고선 그 자리에서 모든 성장 변태를 멈추어 버리게 만들었으니
그리하여 이후 그 전통은 언제나 한 시점을 고정한 박제 반복 우라까이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왜 조선은 조경이라면 죽어나사나 연못 하나 파고선 미류나무 몇 그루 심어놓고 그 주변에 노송 몇 그루 뽑아다가 심는 일로 만족했는가?
몰랐기 때문이다.
더 간단히 무식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우리 조상 참말로 무식했다.
대외 교류라 해 봐야 북경 오가는 사신단 밖에 없었으니 그 바깥에 뭐가 있는 줄도 몰랐고,
혹 그런 낌새라도 있으면 이양선이라 해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만 주입했으니, 그 바깥에 뭐가 있는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니 고작 들여온 나무라 해 봐야 백송 몇 그루에 지나지 않았으니, 몰라서 무식해서 사쿠라를 심지 않았을 뿐이요, 금송을 심지 않았을 뿐이니, 핑크뮬리 댑싸리 알았더래면 가만 뒀을 것 같은가?
알아야 면장을 하지, 있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무엇을 심는단 말인가?
전국 팔도 방방곡곡 꽃 심지 못해 환장하는 이유는 나는 그 억눌림에의 반발이라 본다.
조경이라고는 꽃이라고는 알지도 못한 그 무식했던 시절에의 반란 탄핵이 근저에 깔려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꽃배가 고프다.
꽃?
더 심어야 한다.
이 팔도산하 온 천지 사쿠라 천지 될까지 열라리, 그리고 jollari 심카야 한다.
그렇게라도 응어리 풀어야 한다.
못다 한 꿈 조상들이 무식해서 못 다 이룬 꿈 우리가 이뤄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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