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무기로 가득찬 바이킹 여성 무덤은 바이킹 여전사 증거일까?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5. 11.
반응형


바이킹 사회에서 여성은 어떤 위치였을까? 과학 전문 매체 LiveScience가 한국시각 10일자 관련 특집기사를 탑재하며 이 문제를 심층으로 접근한다.

이에서 주목한 것이 흔히 남성 전유물이라 간주하며, 실제로 꼭 바이킹만 아니라 다른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드러나는 현상, 곧 남자가 무기류를 집중 휴대하는 현상이어니와,

그렇다고 바이킹이라 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바이킹 여성 무덤에서 무기류 집중 매장 모습이 드러난다. 

Laura Geggel이 작성한 특집 기사 전문을 소개한다. 참 좋은 글이다.

 

https://www.livescience.com/archaeology/vikings/if-it-was-a-man-we-would-say-thats-a-warriors-grave-weapon-filled-burials-are-shaking-up-what-we-know-about-womens-role-in-viking-society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무기와 함께 매장된 여성들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바이킹 시대 여성 중 실제로 전사였던 사람이 있었을까? (Image credit: Grace Aldrich)

 

'If it was a man, we would say that's a warrior's grave': Weapon-filled burials are shaking up what we know about women's role in Viking society 

By Laura Geggel 

'남자였다면 전사의 무덤이라고 했을 겁'
무기로 가득 찬 매장이 바이킹 여성 역할에 의문 제기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바이킹 시대 스칸디나비아 일부 여성이 전쟁에 사용한 무기와 함께 매장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문가들 의견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엇갈리고 있다.

스웨덴 비르카Birka에는 약 1,000년 된 바이킹 매장이 있으며, 칼, 도끼 머리, 창, 칼, 방패, 화살통quiver 등 치명적인 무기와 라이딩 장비, 두 마리 군마 해골이 가득하다.

거의 150년 전, 이 무덤이 발굴되었을 때 고고학자들은 그들이 남성 전사의 매장을 보고 있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2017년 매장된 유골의 DNA 분석에 따르면 그 개체는 여성이었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 고고학자이자 2017년 연구 제1저자인 샬롯 헤덴스티에나-존슨Charlotte Hedenstierna-Jonson은 이전 설명들이 너무 성급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비르카 개인의 무술 직업에 대한 사례를 강화하는 추가 연구에도 불구하고, 일부 고고학자는 여전히 그녀가 전사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 비르카 논란은 바이킹 여성 전사들의 존재에 대한 복잡한 고고학적 논쟁을 강조한다.

바이킹 신화와 전설은 전투를 위해 살았고 폭력에 휘말린 여성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실제 삶을 반영하는지는 불안하다.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는 바이킹 시대의 여성 최소 수십 명(A. D. 793~1066)이 전쟁급 무기와 함께 묻혔다.

이 매장들은 수세기 동안 대중의 상상력을 지배해 온 수염이 덥수룩하고 건장한 바이킹 전사의 극남성 이미지와 격렬하게 충돌하는 그림을 총체적으로 그린다.

그리고 성별에 따른 가정 때문에 고고학자들이 무기를 묻힌 바이킹 여성의 수를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발견은 바이킹 사회의 미묘한 그림을 암시한다.

대부분의 전사가 남성이었지만 한 사람의 계급과 직업이 누가 전쟁에 나가는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Ludwig Maximilian University of Munich 고고학자이자 ‘바이킹 세계의 여성과 무기: 북부의 아마존 Women and Weapons in the Viking World: Amazons of the North’(Casemate, 2021)의 저자 레제크 가르데와Leszek Gardeła는 “여성은 남성만큼 강하고 숙련되고 빠를 수 있다”고 말했다.

"생물학에는 그들이 전사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여전히 스칸디나비아 무덤의 열악한 보존, 바이킹 매장지의 수수께끼 같은 특성, 역사적 텍스트의 부족은 많은 여성 매장지의 의미를 논쟁의 여지로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여성 전사가 존재했다고 해도 더 넓은 바이킹 문화에서 그 의미는 불분명하다고 덴마크 로스킬데 박물관 Roskilde Museum 선사시대 고고학자이자 선임 연구원인 올레 카스톨름Ole Kastholm은 라이브 사이언스에 말했다.

그는 "확고한 답을 찾을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발굴자 얄마르 스톨페Hjalmar Stolpe의 현장 기록을 바탕으로 한 그림으로, 비르카 매장지Birka burial 내 유골과 부장품의 위치를 ​​보여준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여성이 약 1,000년 전 전사였을 가능성도 있다. (Image credit: Drawing by Harald Olsen; Public Domain)



무덤이 매장한 것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전역에는 일반적으로 남성 전사로 생각되는 수천 개의 알려진 바이킹 매장이 있다.

대조적으로, 우리는 약 30곳 무덤에서 여성들이 창과 방패와 같은 명백한 무술 장비로 묻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 약 30곳 중 단지 세 곳에서만 장검이 발견됐다.

가르델라Gardeła는 라이브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알려진 바이킹 시대 매장지 중 "통계적으로 말하면 무기로 묻힌 남성의 무덤 중 무기로 묻힌 여성은 1% 미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방패 보스 shield bosses(방패 중앙에 있는 둥근 보호 금속 조각)와 같은 다른 장비나 화살촉과 도끼 머리ax-heads와 같은 가능한 무기를 포함하는 더 많은 여성 매장이 있다.

후자의 매장을 해석하는 것은 특히 도전적인데, 도끼와 화살촉은 전투에서 사용되었지만 사냥과 농장 작업을 위한 도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전사 질문이 논란이 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바이킹 매장이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비르카 매장이 한 예다.

1878년에 노동자들은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여 무덤을 폭파하여 열었고, 그 과정에서 무덤이 손상되었다.

훈련되지 않은 현지인들은 무덤을 발굴하는 일을 도왔다.

이 열악한 발굴 작업은 회의론자들이 한때 한 남자와 이중 매장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비르카 무덤에서 발견된 금속 무기들. 검, 도끼날, 전투용 칼, 창 두 자루, 방패 두 개, 그리고 갑옷 관통 화살 25개. (Image credit: Photo by Christer Åhlin; CC-BY Swedish History Museum)



회의론자들에 따르면, "여성은 결코 그 무기들을 사용할 만큼 강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실제로 그 문제를 다룬 헤덴스티에나-존슨Hedenstierna-Jonson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이었다.

헤덴스티에나-존슨은 라이브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과학적 사실보다는 이런 의견이 모두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 시대의 피해는 분석에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 뼈와 화장된 유골은 고고학자들이 엿보기 전에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부패하는데, 이는 주로 스칸디나비아의 산성 토양 때문이다.

카스톨름은 DNA 분석이나 뼈 연구를 통해 "성을 결정하기 전에 골격을 매우 잘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바이킹 시대가 150년 이상 조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무덤들을 평가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이 무기와 함께 묻힌 바이킹 여성들의 숫자를 체계적으로 적게 계산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마리안 모엔Marianne Moen 오슬로대 문화사박물관 고고학과 학과장은 이번 사태를 캐치22 catch-22라고 규정하며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여성] 무덤을 보유할 수 있다"며 "노르웨이에서 무덤을 발굴하고 칼을 발견하면 '아, 남자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모든 검이 남자들과 함께 묻혀 있는 것이 재미있지 않나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매장에 남성과 여성 관련 유물이 모두 있었다면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있는 이중 매장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아마도 이는 오판일 수 있다.

그러한 잠재적인 편견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성이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전쟁과 관련된 물건들과 함께 묻혔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노르웨이에는 스칸디나비아 민속의 여성 전사들 이름을 따서 "방패 처녀" 매장shield-maiden burials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몇 가지 매장이 있다.

하나는 솔뢰르Solør에 있는 노르드레 쾨렌 매장Nordre Kjølen burial으로, 골격 분석에 따르면 젊은 성인 — 여성일 가능성이 높음 — 이 칼, 도끼 머리, 창촉, 화살촉, 방패 보스, 말 골격 및 도구와 함께 섞여 있었다.

두 번째는 노르드 트뢴델라그Nord Trøndelag의 아운볼Aunvoll에서 여성을 매장한 배 무덤 female boat burial으로, 여기서는 한 여성이 장검 한 자루, 8개 게임 조각, 낫 하나, 창촉 하나, 가위들, 단검들 및 도구들와 함께 묻혔다.

 

노르웨이 노르드레 셸렌 무덤Nordre Kjølen grave에서 발견된 두개골과 검, 도끼날, 창촉, 화살촉 등의 무기들. (Image credit: Ellen C. Holte/©Museum of Cultural History, University of Oslo)



스웨덴 욀랜드Öland에 있는 클린타 매장Klinta burial에서는 도끼머리 하나, 단검들, 쇠지팡이 하나 등 귀중한 금속 유물을 가진 한 엘리트 여성으로 추정되는 이의 화장된 유해가 있어 일각에서는 그녀가 뵐바völva, 곧 바이킹 시대의 주술사sorceress인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날카로운 무기와 함께 묻히지는 않았지만 "노르웨이 서부 해안에는 방패 보스가 있는 여성 매장이 꽤 많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모엔은 라이브 사이언스에 말했다.


해석하기 어려운 문제들

그래도 많은 고고학자는 이 무덤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바이킹들이 죽은 사람들을 처리하는 일관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스톨름Kastholm은 "바이킹 시대 매장물을 전체적으로 보면 이상하고 변형이 크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어떤 데서는 발 하나만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한 여성이, 그 다음에 다른 여성이 몇 년 후에, 그리고 나서 반쯤 남성의 매장"이라는 삼중 매장이었다.

이런 신비롭고 일관성 없는 매장은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1981년 덴마크 게르드룹Gerdrup에서 발견된 무덤 예를 들어보자고 카스톨름이 말한다.

한 여성이 창 하나와 함께 묻혔고, 몸에는 큰 돌들이 있었다.

발목이 묶여 목을 매었을 가능성이 있는 그녀의 성인 아들도 무덤에 있었다.

1981년 덴마크 게르드룹Gerdrup에서 발견된 무덤의 예를 들어보자고 카스톨름이 말한다.

한 여성이 창으로 묻혔고, 몸에는 큰 돌이 있었다. 발목이 묶여 목을 매었을 가능성이 있는 그녀의 성인 아들도 무덤에 있었다.

 

바이킹 시대 어머니(오른쪽) 장례는 머리 위에 큰 돌들이 놓인 채였고, 아들(왼쪽)은 발목이 묶인 채 목이 부러져 있었는데, 아마도 교수형에 처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 곁에 창이 발견됐지만 연구진은 그녀가 전사였을 것으로 추정하지 않는다. (Image credit: Tom Christensen, ROMU)



창은 그 여자가 전사라는 신호일 수 있었다.

하지만 카스톨름은 무덤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아들이 오딘에게 헌신하여 교수형에 처해졌고, 돌들은 여성의 높은 지위를 나타내며, 귀중한 "죽은 자를 오딘에게 바치는 마무리 의식에서 창이 무덤 바닥에 꽂혔다"고 생각한다고 2021년 연구에서 주장했.

이것은 복잡한 "영안 극장"의 한 형태였을 것이며, 무덤터에서 제정되었을 일종의 연극이었을 것이며, 연구에 따르면 이는 일반적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비르카 매장에 대해 카스톨름은 고인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었고 많은 무기와 함께 매장되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저는 그것에 대해 완전히 확신한다," 라고 그가 말했다.

"만약 그것이 그녀가 전사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그걸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남성 무덤에도 적용될 것이다."

 

1,000년 전 비르카 여성 매장 모습은 어땠을까? 한쪽 끝에 두 마리 말이 묻혀 있고, 주변에는 무술 관련 물품들이 놓여 있었다. (Image credit: Reconstruction by Þórhallur Þráinsson; Copyright Neil Price; Commissioned by the project)


 

역사적 텍스트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

무기를 든 여성의 매장을 맥락에 맞게 설명하기 위해 고고학자들은 역사적 텍스트를 살펴보았다.

바이킹들은 몇 천 개 룬 명문runic inscriptions만을 남겼다.

그래서 전쟁 같은 여성과 "방패 처녀shield maidens"에 대한 대부분의 묘사는 바이킹 이후 중세 시대에 쓰여진 반역사적인 작품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색소 그라마티쿠스Saxo GrammaticusGesta(약 1150년에서 1220년 사이에 살았던)가 저술한 덴마크의 반역사인 "게스타 다노룸Gesta Danorum"에서 전사 여성 라거타Lagertha는 남자 복장을 한 여성 무리와 함께 여행하고 나중에 그녀와 이혼하는 바이킹 왕과 결혼하여 여전히 중추적인 전투에서 그와 싸운다.

그리고 1986년 분석에 따르면 헤르뵈르와 하이드레크의 사가Saga of Hervör and Heidrek와 같은 일부 사가들sagas은 가족 재산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무기를 들고 있는 노르웨이 여성들을 묘사한다.

남자만이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남자에게 딸만 있다면 때로는 가족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기능적인 아들’로서 전사의 역할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모엔Moen은 2021년 논문에서 13~14세기 바이킹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쓴 아이슬란드 사가에는 "여성들이 군대를 이끌고 폭력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고 썼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바이킹 여성들이 실생활에서 전사였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어떤 이야기들은 다른 신화적이거나 신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일부 증거는 후자를 가리킨다.

여성들이 도끼 같은 무기를 휘두르는 사가들은 종종 마법의 함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고대 노르만족의 요스베팅가 이야기Old Norse Ljósvetninga saga에서, 크로스드레싱 노르만족 주술사cross-dressing Norse sorceress는 미래를 보기 위해 도끼로 물을 때린다.

가르데와Gardeła는 2021년 기사에서 도끼는 스칸디나비아, 핀란드 및 중부 유럽의 민속 전통에서 마법과 자주 연관된다고 지적했다.


젠더는 운명이 아니었었다

바이킹 시대 이후 건장하고 무자비한 남성 바이킹 전사의 고정관념은 그들의 업적을 자세히 설명하는 중세 사가에서 발생했으며, 다시 스칸디나비아와 아이슬란드의 국가 낭만주의 시대인 19세기 후반에 발생했다.

하지만 바이킹 시대 사회가 "이분법적 성별 이상에 덜 지배되고 유동적인 사회적 의무에 더 많이 지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모엔은 2021년 기사에서 썼다.

이것은 누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단순한 남녀 이분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것은 바이킹 시대의 무덤 용품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 베스트폴드Vestfold에 있는 바이킹 시대 묘지에서 모엔은 무기가 남성 무덤에서 더 흔하지만 여성 매장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찬가지로, 보석은 여성 무덤에서 더 두드러졌지만, 남성 무덤의 40%도 보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는 기사에서 "거의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이라고 썼다.

바이킹 사회에 얼마나 많은 폭력이 스며들었는지를 감안할 때, 그녀는 "인구의 절반만이 바이킹 사회에 투자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것"이라고 기사에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여성 전사들이 "남자의 역할"을 채우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카스톨름은 말했다.

오히려 "전사"는 아마도 직업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이 남성이었지만 일부는 여성이었던 현대의 소방처럼 말이다.

 

스웨덴 비르카에 묻힌 여성 모습을 묘사한 그림. 칼과 도끼날을 포함한 여러 무기와 함께 매장되었다. (Image credit: Reconstruction drawing by Valeri Tancredi; Copyright Neil Price; Commissioned by the project)



바이킹 시대의 남자들 사이에서도 "전사"가 되는 것은 다른 의미였다.

농부, 어부 및 기타 농민들은 때때로 싸웠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사들은 사회 엘리트였다.

헤덴스티에나-존슨은 "당신의 생물학적 성은 [당신의 직업에서] 요인이었지만 주요 요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주요 요인은 당신의 역할과 위치, 가족이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바이킹 사회에서 성별이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추론하기 위해 이러한 매장에 대한 정보를 사용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모엔은 말했다.

"I don't think it even necessarily indicates any kind of gender equality," she said. "What I do think is that you have much evidence women could be warriors and were warriors at certain times and in certain conditions." 

"나는 그것이 반드시 어떤 종류의 성 평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라고 그녀가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여성들이 전사가 될 수 있고 특정 시간과 특정 조건에서 전사였다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모엔은 고고학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다.

매장이 여성 전사들이 존재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요

"맞다, 분명히 여성들은 무기와 함께 묻힐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또 하나이며

그리고 여성들이 묻힌 무기를 실제로 사용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회의론자들이 있다.

"그들은 그것이 정말 꽤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을 들인다" 라고 그녀가 말했다.

모엔에게 여성 바이킹 전사들의 증거는 바로 우리 눈앞에 있다.

"오캄의 면도날을 알리라 — 가장 간단한 설명이 보통 최고다," 라고 그녀가 말했다.

"칼을 든 여자를 찾으면, 칼을 든 남자와 똑같이 해석해야 해."

마지막으로 카스톨름은 "항상 많은 논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논쟁은 고고학적 증거보다는 바이킹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 애착과 우리의 시대에 관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물론 바이킹 시대에는 전사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여성이었다고 확신한다," 라고 카스톨름이 말했다.

맞다, 많은 무덤은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지만, 적어도 몇몇 무덤은 인상적인 수의 하드코어 무기들이 묻혀 있다.

그는 "만약 그것이 남자라면 우리는 '저곳은 전사 무덤'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주: 이 기사에서 우리는 생물학적 성별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사망한 개인들의 성별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If it was a man, we would say that's a warrior's grave': Weapon-filled burials are shaking up what we know about women's role i

New research is finding that some women in Viking Age Scandinavia were buried with war-grade weapons. Experts are divided about what that means.

www.livescience.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