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사이언스Live Science에서 근자 다룬 아티클이라,
서구 독자를 겨냥한 까닭에 바이킹이라고 하면 우리 역시 친숙하기는 하지만, 저 7가지 잘못된 바이킹 신화까지 교양 수준이 다달았는지는 나는 자신이 없다.
암튼 저 바이킹은 주로 영화라 드라마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한테도 아주 익숙한 존재로 격상한 것만은 분명하니 음미할 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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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에 대한 오해는 많다. 그들은 종종 날개 달린 투구를 쓰고 피에 굶주린 불결한 전사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는 19세기 유럽 미술에서 낭만적인 영웅이나 이국적인 야만인으로 묘사한 바이킹 모습을 바탕으로 삼는다.
진짜 바이킹은 단지 전설 속 인물들만은 아니었다.
투구에 날개나 뿔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이킹에 대한 대표적인 7가지 오해를 파헤쳐 보겠다.
바이킹은 날개와 뿔이 달린 투구를 썼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19세기 독일 예술가 카를 에밀 되플러Carl Emil Doepler한테서 유래한다.
그는 리하르트 바그너 4부작 서사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The Ring of the Nibelung"(Der Ring des Nibelungen)에서 날개 달린 투구를 쓴 보탄Wotan(오딘Odin)과 같은 게르만족 신들을 의상으로 묘사했다.
바그너는 게르만 신화에서 영감을 얻었으나 바이킹인들이 일부를 차지하는 관련 북유럽인들 역시 개 달린 헬멧을 썼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바이킹 투구에 뿔이 달려 있다는 관념은 19세기 그림에서 유래되었으며,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재현되었다.
이 신화는 1942년 덴마크에서 발견된 뿔 달린 의식용 투구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 기원은 기원전 900년경으로, 바이킹보다 1천 년 이상 앞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킹들이 "피의 독수리blood eagle"로 적을 처형했다?

"피의 독수리" 처형은 중세 스칸디나비아 문헌에 묘사되지만, 실제 관행이라기보다는 그저 섬뜩한 생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 북유럽 사가saga에 따르면, 일부 바이킹 왕은 적의 척추에서 갈비뼈를 잘라내고 폐를 등에서 꺼내 날개처럼 보이게 하여 처형했다고 한다.
사가들은 이 "피의 독수리" 처형 두 가지 다른 사례를 제시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사가들이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그러나 19세기 바이킹 관련 이야기와 일부 현대 TV 프로그램에 이 장면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바이킹은 단지 약탈자였을 뿐?

많은 바이킹이 약탈자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약탈자였던 것은 아니며, 그들은 또한 열렬한 무역가이자 용감무쌍한 탐험가이기도 했다.
아랍 은화와 같은 유물은 바이킹의 무역망이 비잔틴 제국에서 영국 제도까지 뻗어 있었음을 보여주며,
캐나다 뉴펀들랜드Newfoundland 랑스 오 메도스L'Anse aux Meadows에 있는 바이킹 정착지는 바이킹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보다 거의 500년 앞선 서기 1000년경에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 일부 지역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바이킹은 모피, 바다코끼리 상아walrus ivory, 호박amber 무역으로 유명했으며, 일부 현대 역사가들은 바이킹의 확장에 대한 경제적, 문화적 이유가 약탈과 노예 약탈만큼이나 중요했다고 주장한다.
바이킹은 극도로 폭력적이었다?

바이킹들이 때때로 폭력적이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맞다, 자주 그랬다.
하지만 그들은 많은 다른 사회가 똑같이 폭력적이었던 폭력적인 시대에 살았고, 당시 바이킹들이 다른 어떤 이들보다 더 폭력적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서기 793년 영국령 린디스판Lindisfarne 섬 습격과 같은 유명한 침략들은 바이킹들에게 폭력적인 악명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잔혹한 전쟁과 학살은 중세 초기 유럽 전역에서 흔한 일이었고, 바이킹들이 다른 모든 이들보다 유난히 더 폭력적이었다는 생각은 빅토리아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모든 바이킹은 금발이었다?

모든 바이킹이 키가 크고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노르딕Nordic"처럼 생겼다는 생각은 19세기 유럽의 인종 이론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바이킹은 민족이라기보다는 문화 집단이었다.
최근 바이킹에 대한 DNA 연구 결과, 스칸디나비아인과 남유럽인, 슬라브인, 심지어 일부 사미족Saami(스칸디나비아 최북단의 반유목 민족으로 전통적으로 순록을 치던 라프족Lapps)이 혼합된 것으로 밝혀졌다.
바이킹은 비잔티움이나 이슬람 세계처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일부 바이킹은 그 지역 출신의 조상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바이킹 전사들의 무덤에서 발견된 DNA 증거는 일부 바이킹이 인종적 획일성을 공유하기보다는 검은 머리카락과 다양한 생김새를 가졌음을 시사한다.
바이킹들은 비위생적이었다?

바이킹은 씻지 않은 (그리고 냄새나는) 전사라는 이미지가 일반적이지만, 바이킹들은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깨끗했다.
바이킹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빗, 족집게tweezers, 귀지 제거용 귀후비게 등 몸단장이 중요했음을 보여줏다.
또한 바이킹 그릇 조각들은 비누를 자주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당시에는 목욕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바이킹 풍습은 두드러졌다.
아랍 탐험가 아흐마드 이븐 파들란Ahmad ibn Fadlan은 서기 921년에 중세 동슬라브 지역인 루스Rus의 바이킹들이 매일 씻는 것을 기록했는데, 그는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바이킹들은 기독교에 순화했다?

기독교가 바이킹 세계 전역에 퍼져 북유럽 신 숭배를 대체하면서 결국 바이킹의 폭력성이 줄어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는 기독교 선전에 불과할 수 있다.
실제로 바이킹은 8세기경 이교도로 시작했으며, 10세기에 이르러서는 하랄 블루투스Harald Bluetooth가 덴마크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바이킹은 역사 전반에 걸쳐 잔혹한 행각을 벌인 것으로 보이며,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에도 바이킹의 폭력이 가라앉았다는 증거는 없다.
집단 무덤에서 발견된 증거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바이킹들 역시 많은 사람을 학살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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