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46)
황하 얼음 두 수(黃河氷二首) 중 둘째
[明] 이몽양(李夢陽) / 김영문 選譯評
한 밤중 하얀 얼음
망망한 곳에
바람 부니 모래만
휘날아 오네
양원(梁園)에 온밤 내내
눈이 내려서
마른 나무에 모두
매화 피었네
夜氷白莽莽, 風來但飛沙. 梁園一夜雪, 枯樹皆梅花.
망망한 황하 얼음판은 끝없이 펼쳐지고, 그 위로 모래 섞인 겨울바람만 휘몰아친다. 모래 섞인 바람은 황사다. 중국에서는 풍사(風沙)라고 한다. 중국 서쪽과 북쪽 사막에서 불어온다. 그 서북풍을 타고 온밤 내내 눈이 내려 양원(梁園)을 뒤덮었다. 아침에 문을 여니 세상은 온통 매화가 핀 듯한 눈꽃 천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눈꽃은 메마른 인간 세상을 포근하게 감싼다. 춥고 황막한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하얀 눈이다. 이 시는 황막함과 포근함이란 두 가지 겨울 풍경을 대비하여 아름답게 묘사했다. 겨울도 살아갈 만한 계절임을 일깨워준다.
이 시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양원(梁園)에 얽인 일화를 알아야 한다. 양원은 ‘양원설제(梁園雪霽)’의 준말이다. ‘양원의 눈 개인 경치’라는 뜻이다.
한(漢)나라 제후국 양(梁)의 도성이 수양(睢陽: 지금의 商丘)에 있었다. 양원은 한나라 초기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을 평정하고 세력을 떨친 양효왕(梁孝王)이 수양에 조성한 대형 원림이다.
양효왕은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문학예술도 좋아하여 한나라 초기 유명한 사부(辭賦) 작가 매승(枚乘)과 사마상여(司馬相如) 등을 초빙하여 상객으로 삼았다. 또, 양원에 온갖 기이한 나무와 어여쁜 화초를 심고 다양한 기암괴석까지 배치하여 화려함을 극했다. 특히 양원에 눈이 내리다가 갠 후 찬란한 햇살에 반짝이는 눈꽃 세상은 천하제일의 설경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중국 한시에는 이처럼 역사 속 전고(典故)를 바탕에 까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작법은 지층에 켜켜이 쌓인 화석처럼 시의 내용과 의미를 풍부하게 하기도 하지만 자칫 시의 자연스런 흐름을 해치고 시를 난해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양원이란 전고가 전체 시와 잘 어우러져 겨울 설경의 의상과 운치를 훨씬 더 강화해주고 있다.
다만 수양의 양원을 마치 황하 연안 변경(汴京: 지금의 開封)에 있는 것처럼 묘사한 것은 이몽양의 오해다. 변경이 전국시대 위(魏)나라 도성 대량(大梁)이었기 때문에 역대로 많은 문인들이 변경에 양원이 있다고 착각했다.
'漢詩 & 漢文&漢文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이 실어오는 낙화, 백설이 빚은 풍경 (0) | 2019.01.20 |
---|---|
병 많은 그대, 요새 몸은 어떠신가? (0) | 2019.01.20 |
향기는 그윽한데 매화는 보이지 않고 (0) | 2019.01.18 |
가위로 물 오려 만든 눈꽃 (0) | 2019.01.17 |
이른 매화, 녹지 않은 눈 (0) | 2019.0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