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한시, 계절의 노래(248)
백설곡 열 수(白雪曲十首) 중 첫째
[明] 하경명(何景明) / 김영문 選譯評
고운 임 아침에
설경 즐기러
술상 차려 높은 누대
자리 잡았네
중춘의 달밤인가
의심하는데
바람은 낙화까지
보내오누나
美人朝玩雪, 置酒臨高臺. 秪疑仲春月, 風送落花來.
종묘 악공청
봄을 기다리는 심정을 요란하지 않게 드러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눈이 내려 세상을 하얗게 덮었고 아직도 펄펄 눈발이 날린다. 고운임은 새하얀 눈 세상을 즐기려고 높은 누대에 술상을 차려 백옥 같은 설경을 바라본다. 천지는 온통 옥빛으로 가득하다.
때는 아침이지만 마치 봄이 무르익는 달밤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하얀 눈꽃이 매화인양 벚꽃인양 펄펄 날아와 술잔 속으로 스며든다. 이 정도면 겨울에 휘날리는 눈꽃이 아니라. 봄에 쏟아지는 꽃비라고 해야 마땅하다.
“기억 저편에서/ 전신으로 떨고 있던/ 이름표가// 흩날리며 흩날리며/ 내 몸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밤 벚꽃이 진다”(권정남, 「밤 벚꽃이 진다」) 기억 저편에 가라앉아 있던 그대의 이름이 되살아나 펄펄 날리는 눈꽃 수만큼 허공을 가득 채운다. 아련한 이름은 그렇게 술잔에 녹아 들어 다시 내 몸속 깊이 침전된다.
종묘 영녕전
봄은 아직 멀리 있지만 시인은 눈 내리는 아침에 이미 봄꽃 지는 달밤의 정취를 만끽한다.
중국 명나라 한시는 흔히 당시와 송시 사이에서 별 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특히 “시는 반드시 성당을 본받아야 한다(詩必盛唐)”고 주장한 전칠자(前七子)와 후칠자(後七子)의 한시는 성당의 아류 정도로 간주되기 일쑤다. 이 시의 작자 하경명도 전칠자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성당 시를 모방한 이들의 시에서도 이처럼 아름다운 시가 존재한다.
하기야 이들도 시인으로 불린 만큼 자신만의 시 창작에 무심할 리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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